류근, 새
지혜로운 새는 세상에 와서
제 몸보다 무거운 집을 짓지 않는다
바람보다 먼 울음을 울지 않는다
지상의 무게를 향해 내려앉는
저녁 새 떼들 따라 숲이 저물 때
아주 저물지 못하는 마음 한 자리 병이 깊어서
집도 없이 몸도 없이
잠깐 스친 발자국 위에 바람 지난다
가거라
손택수, 꽃단추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 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남유정, 꽃이 돋는 까닭
내가 흔들리는 것은
당신을 향해
마음이 가지를 뻗으려하기 때문
당신을 향해
이 단단한 거죽을 뚫고 나오려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
김희업, 눈물의 가격
눈물 만 원이라 써 붙인
안경점 앞에서 절로 발걸음 멈춰진다
눈물에도 굳이 가격을 매긴다면 어떨까
하여, 지금까지 내가 흘린 하찮은
눈물의 가격은 얼마일까
나보다 더 많이 흘렸을 어머니의 눈물
아마 염전을 이루고 남았으리
헤아릴 수 없는 어머니의 눈물 값
어머니의 눈물 본 적 없는데
그나저나 눈물빛 갚을 길 막막하여라
박완호, 별
목수였던 아버지는 죽어서
밤하늘 가득
반짝이는 순금의 못을
박아놓았네
텅
빈
내 마음에
화살처럼 와 꽂히는
저 무수한
상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