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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자식이 별 것도 아닌 걸로 질질 짜고 그래."
"남자가 뭐 그리 감성적이냐. 계집애같이"
어릴 적부터, 내가 정말 많이 들어온 말. 유난히 눈물 많고 여린 성격 탓에 놀림을 받아온 나는 얼마 전까지 나에게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남성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온 오랜 나날들.
문득 짝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지거나 이성에게 차인 날이면 커튼을 확 쳐놓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노트북> 같은 영화를 보면서 실컷 울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에픽하이 - 우산'이나 '아이유 - Rain Drop' 같은 노래를 들으며 혼자 슬픈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하나같이 보이는 반응.
"왜 저래 계집애같이"
유난히 감성적인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붙은 꼬리표. 계집애 같은 남자.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다. 우리 사회가 그려놓은 마초상 ㅡ소위 말해 무거운 거 잘 들고, 눈물도 별로 없고, 눈빛만 봐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스타일 ㅡ 보다는 작은 체구에 슬픈 영화 보면서 눈물을 자주 흘리고, 쓴소리도 잘 못하는 순종적인 모습이 여성성에 가까웠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 기준은 남존여비 사상을 가진 누군가가 그려놓은 허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계집애란 말이 여성 비하적인 표현이라는 사실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까.
물론 나조차도 남존여비,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 깊이 박혀있던 90년대에 태어났기에 ‘남자는 마초미가 넘치고,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릴 적부터 마초미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비정상적인 남성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남자인 듯 남자 아닌 남자 같은 나'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그게 너무나도 당연했다. 불과 몇 달 전,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그 책을 처음 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늘날 여성들의 삶을 자연스레 반영하여 인기를 끌었고, 특히 최근에는 아이린 양이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여 재조명된 책. 또한 나의 인생을 크게 바꿔주기도 한 인생 도서.
《82년생 김지영》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읽다가 너무나 서러운 마음에 몇 번을 울컥했다는 사람,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라 덤덤하게 읽었다는 사람, 오히려 현실보다 훨씬 좋게 표현했다며 아쉬워하는 사람.
반응은 다양했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이 분노했다는 것.
많은 여성들이 분노한 반면, 여전히 많은 남성들은 이 책을 접하지 않았다. 읽지도 않고 이 책이 여성만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다. 물론 나도 이 책이 나온지 한참 지나서야 읽었다. 오래전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져보라던 친한 친구의 조언조차 외면한 채로.
왜냐하면 당장 나에게 와 닿은 문제가 아닐뿐더러, 남자와 여자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해서 욕을 먹을 바에야 그냥 중립이라 말하고 외면하는 게 가장 현명한 판단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던 보수 마초남들의 기대를 뒤로한 채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며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유력 대권 후보부터 시작해, 연예계와 문단계의 거장으로 불리던 사람들까지 전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이를 계기로 많은 여성들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고, 오랜 세월을 지배해오던 남성성에 일격을 가했다. 이는 중립을 외치던 나 같은 사람들에게도 큰 깨달음을 전해주었다. 전혀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중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에 반발하기 급급하다.
“그럼 무거운 정수기를 드는 남자는 뭔데?”
“이미 평등한 세상이 왔는데?”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받고 있는데?"
적어도 단 한 번이라도 이 시대의 김지영에 몰입해봤다면, 아니 이 책을 읽어보기라도 했다면 ㅡ올바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ㅡ 절대로 이런 말이 튀어나올 리가 없다. 이를 보면 유시민 작가가 한 토론회에 나와서 말씀하셨던 단어가 떠오른다.
'무식의 소치'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재벌 기업의 차별화에는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다수가 차별받는 입장에 서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재벌가 혹은 CEO들이 “월급 받고 일하면서 뭐가 그리 불만이냐”라며 직원들을 무시를 하거나 "국민은 개돼지다" 따위의 차별적인 발언을 내뱉으면,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차별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유독 성 차별 문제에서만큼은 둔감하다. 왜냐, 내가 차별받는 입장에 서있지 않기 때문에.
이 뿐만이 아니다. 땅콩 회항처럼 몰상식한 모습을 보이는 재벌들을 보면 '가해자'인 그들의 사퇴를 주장하면서, 성범죄자들이 잘못하면 오히려 '피해자'인 여자들 보고 조신하게 행동하라는 말을 한다. 심하게는 여자들도 여지를 남긴거라며 피차일반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평등한 사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실컷 두들겨 맞으며 참다 참다 겨우 한, 두 대 때렸더니 갑자기 제3자가 와서 “너도 같이 때렸잖아. 둘 다 똑같으니까 서로 사과해 "라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래, 나도 때렸으니 이제 속이 시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적어도 나처럼 억지로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기 싫다면, 누군가가 만든 남성성으로 인해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무거운 걸 들면서 힘자랑하기도 싫은 남자라면 페미니스트가 되면 된다.
성차별 문제에 대해 여전히 알아갈 것도, 개선해야 할 역사적 과오도 너무나 많지만 그래도 나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계집애’라는 비하적인 발언을 내뱉는 사람들과 상종할 필요도 없고,
허상에 불과한 ‘남성성’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출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으니.
결과적으로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냥 그런 '사람'일뿐.
출처 | http://brunch.co.kr/@youthhd/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