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돌담을 쌓으며
알고 있을까
돌담을 쌓으며, 거기, 뉘가 심지 않아도
담쟁이넝쿨은 자라
돌담을 감싸는 것을
돌담 또한
아무리 담쟁이넝쿨이 기어올라도
귀찮은 몸짓 한 번 내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 후, 바람 부는 날
비바람 몰아쳐, 담쟁이잎들 어지러이 흩날릴 때
돌담은 제 몸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리는
넝쿨들을 가려주고
넝쿨 또한
그 풍화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허물어져 내리는 돌담들을, 제 온몸으로 기어가
무너지지 않게, 혼신으로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
나는 보네
외딴 섬, 빈집 찾아들어
한 귀퉁이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으며
최영미, 청개구리의 후회
가지 말라는
길을 갔다
만나지 않으면 좋았을
사람들을 만나고
해선 안 될
일들만 했다
그리고 기계가 멈추었다
가고 싶은 길은 막혔고
하고 싶은 일은 잊었고
배터리가 나갔는데
갈아끼울 기력도 없다
이태수, 이슬방울
풀잎에 맺혀 글썽이는 이슬방울
위에 뛰어내리는 햇살
위에 포개어지는 새소리, 위에
아득한 허공
그 아래 구겨지는 구름 몇 조각
아래 몸을 비트는 소나무들
아래 무덤덤 앉아 있는 바위, 아래
자꾸만 작아지는 나
허공에 떠도는 구름
소나무 가지에 매달리는 새소리
햇살이 곤두박질하는 바위 위 풀잎에
내가 글썽이며 맺혀 있는 이슬방울
목필균, 강
기울어진 만큼 내달리다가도
분에 넘치면 넘쳐지고
메말라지면 목마른 대로
나누며 보태며 가는 길
언제나 네게는 끝이 없었다
질러가지 못할 길은 돌아설 줄 알고
굽이치는 곳에선 핑그르르 여울지며
제 몸 깎아 자리 내어 준 산자락
허옇게 뿌리 보이면 그 상처
깊게 네 몸에 묻었다
기울면 기운만큼 내달리며
넘치고, 목마른 사랑 다 품어 안고
굽이치면 제 몸 부수어 모래톱으로
길을 열어
한세월 쉼 없이 흐를 수 있는
너처럼, 너처럼 살고 싶다
안도현, 튀밥에 대하여
변두리 공터 부근
적막이며 개똥무더기를 동무 삼아 지나가다 보면
난데없이 옆구리를 치는 뜨거운
튀밥 냄새 만날 때 있지
그 짓 하다 들킨 똥개처럼 놀라 돌아보면
망할놈의 튀밥장수, 망하기는커녕
한 이십 년 전부터 그저 그래 왔다는 듯이
뭉개뭉개 단내 나는 김을 피워올리고
생각나지, 햇볕처럼 하얀 튀밥을
하나라도 더 주워 먹으려고 우르르 몰리던
그때, 우리는 영락없는 송사리떼였지
흑백사진 속으로 60년대며 70년대 다 들여보내고
세상에 뛰쳐나온 우리들
풍문으로 듣고 있지, 지금 누구는
나무를 타고 오른다는 가물치가 되었다 하고
누구는 팔뚝만한 메기가 되어 진흙탕에서 놀고
또 누구는 모래무지 되고 붕어도 잉어도 되었다는데
삶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제대로
나는 가고 있는지, 가령
쌀 한 됫박에 감미료 조금 넣고
한없이 돌리다가 어느 순간 뻥, 튀밥을 한 자루나 만들어 내는 것처럼
순식간에 뒤집히는 삶을 기다려오지는 않았는지
튀밥으로 배 채우려는 욕심이 크면 클수록
입안에는 혓바늘이 각성처럼 돋지
안 먹겠다고, 저녁밥 안 먹겠다고 떼쓰다
어머니한테 혼나고 매만 맞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