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적화전야(赤化前夜)
윤호정
“대장동무, 이 사람들이 아지트 앞에서 서성거리기에 잡아왔습니다.”
군용점퍼에 도리우찌(사냥모)를 눌러쓴 대장은 매서운 어투로 물었다.
“어디 사는 누구요?”
“지들은 요 아래 박사동에 사는 나무꾼인데 지는 박삼득이라 하고 이명호는 내 생질이고 김재섭이는 명호 동무구먼요.”
그들은 세 사람의 이름과 나이, 가족관계를 적고 소지품을 조사했다.
“우리가 누군지는 잘 알고 있겠지요, 만약에 내려가서 우리를 봤다고 소문을 내거나 경찰에 신고를 하면 당신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내말 알아듣겠소?”
“예, 그러면요, 맹세코 입을 다물겠습니더.”
“그럼 됐소, 취사병동무, 점심때가 됐으니 쌀밥을 대접하시오.”
반찬이라곤 소금에 절인 무김치에 새우젓뿐이었으나 밥은 하얀 쌀밥이었으며 밥을 먹으면서 흘깃흘 깃 둘러보니 꽤 넓은 동굴 안에는 각설이패 같은 각양각색의 빨치산들이 남폿불 아래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경고하는데 우리를 봤다는 예기를 하면 절대로 아니 되오, 우리조직원들이 항상 당신들 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예, 예, 점심 잘 먹고 갑니더, 정말로 고맙씸더.”
단걸음에 동네까지 내려와서는 한 대씩 꿉으며 한숨을 돌렸다.
“아이고 십년감수했네, 가깝은 박사동에 산다고 했으니 망정이지 멀리 하양에서 왔다고 했으마 무슨 해코지를 당했을지 모른다 아이가.”
“아재요, 신고해야 안 되겠습니꺼?”
“털끝 하나 다친 거 없이 쌀밥 잘 얻어먹고 왔는데.....?”
“그래도 만약에 들통이 나면 통비분자로 몰려가 박살납니더, 마 하양지서에 가서 본대로 얘기 했뿝시더, 재섭이 니는 우예 생각하노?”
“저런 놈들은 당장 잡아다가 모두 총살시겼뿌러야 된다.”
팔공산유격대는 단기4279년 10월 1일 대구폭동사건 때 영천군청과 경찰서를 습격하여 현금과 무기 를 탈취한 뒤 불을 지르고 달아난 좌익들로 그 우두머리는 남로당영천군당위원장인 서민석이었다.
그는 청통면 신덕사람으로 대구사범을 나와 영천군에서 보통(초등)학교선생을 하면서 야학을 열어 당시로서는 금기사항이었던 우리역사와 한글을 가르치고 사회주의사상을 전파하며 적색농민회를 이끌 어 왔다.
일경의 검거망이 좁혀들자 그는 만주로 피신해 중국공산당원이 되어 국제공산주의 경험을 쌓았으며 여기서 한 살 위인 김일성을 만나 호형호제하면서 정치공작원으로 출발하여 장백현당위원장에까지 올랐다.
또한 아내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국내공작활동을 하다가 아내는 총 맞아죽고 자신은 체포되어 서대 문형무소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그는 곧바로 평양으로 가 김일성을 만나 적화통일에 관한 지령과 함께 공작금으로 어린아이 머리통 만한 아편덩어리를 받아와 영천장에 ‘영창상회’라는 큰 포목점을 열고 남로당조직재건에 착수했다.
해방 후 처음 맞이하는 삼일만세운동기념 군민대회에서 그는 ‘만세운동의 기념은 친일파와 지주계급 이 아닌 인민이 주인이 되는 새 조국의 건설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여 열렬한 박수와 환영을 받았다.
이후 민석은 좌익을 대표하는 영천유지로 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따르고 장사도 번창했으나 폭동사건 이후로는 한동안 종적을 알 수 없었다.
그는 부산에서 한대곤이라는 가명으로 일본에 농수산물수출과 기계부품수입 밀무역을 하고 있었으며 멸치포대로 위장한 돈 보따리를 진 무장수행원과 함께 와촌면 소미기 골짝의 목장비트(비밀아지트)로 와 영천군 읍, 면책과 팔공산, 보현산 유격대장회의를 소집했다.
“동무들 반갑소, 그간 일본을 좀 다녀오느라 격조했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 수령께서 여러분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거금을 보내왔소.” 하자 일동은 박수를 치며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 들었다.
“여러분들이 고대하던 남반부해방의 날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소, 내년 여름이면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오, 그러니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번겨울은 이겨내야만 하오, 월동대책에 대해 팔공산대장부터 말해보시오.”
“빨치산은 총에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낙엽지고 눈이 오면 발자국이 남게 되 므로 보투(보급투쟁)를 할 수 없어 80명 식구의 겨울날일이 막막합니다.
“보현산도 50명이나 되니 팔공산형편과 다를 바가 없소이다.”
“영천읍책 한 말씀 허겄소, 우선 수령님의 하사금으로 발등의 불부터 끄고 팔공산을 끼고 있는 청통 면의 권상돈, 신녕면의 한영섭, 보현산자락인 화북면의 조규식, 자양면의 정동채에게 각 백만 원씩, 영천의 최대지주인 이은식에게는 삼백만 원의 월동비를 거두도록 헙시다.”
“좋소, 그러면 구체적인 실행방법에 대해 말해보시오.”
“신녕면책 올시다, 먼저 읍, 면책의 책임 하에 비밀리에 우리의 뜻을 지주들에게 전하고 거절하거나 신고를 하면 목숨을 내놔야 한다고 쐐기를 박은 후 본보기로 한두 놈을 절단내버립시다.”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면 그 대책은?”
“경찰이나 청년단이 냄새를 맡으면 한판 붙어야지요, 그만한 위험부담도 없이 그 큰돈을 우예 구하겠습니꺼?”
“여러 의견들이 나왔으나 실천하기엔 무리가 많고 경찰과 정면승부를 한다는 것도 무모하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아니 위원장동지, 이 큰일을 어찌 혼자서 다 감당하실라 캅니꺼, 무슨 탈이라도 나면 우리들은 누굴 믿고 혁명과업을 완수하겠습니꺼?”
“걱정들 마시오, 내게도 다 생각이 있소, 나는 만주벌판에서 일본군 특무대의 포위망 속에서도 살아남 은 사람이오, 그까짓 걸 일이라고....”
“그런데 난처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저께 보초병의 실수로 와촌면 박사동에 사는 나무꾼들에게 아지트가 발각되었습니다.”
“아니 뭐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나무꾼들의 신원을 확인한 후 쌀밥으로 점심을 후히 대접하고 당부와 위협을 가해 돌려보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뒤가 찜찜해서.....”
“나도 예감이 별로 좋지 않소, 경찰이 몰려오거든 응사하지 말고 중요한 것들만 챙겨 소미기와 음양 비트로 나누어 철수하시오.”
“오늘저녁이라도 그놈들의 입을 영원히 다물도록 만들어 버리면....”
“그건 안 되오, 무고한 양민을 살상 하는 건 절대 금물이오.”
대구에서 목욕과 이발을 한 민석은 모본단두루마기에다 금태 안경에 콧수염까지 붙이고 나니 영락 없이 돈께나 있어 보이는 중늙은이였다.
집을 나서자 경호원이 따랐으며 포항행기차를 타고 영천에 도착했다.
“어르신, 십일사건 때 군청과 경찰서를 요절낸 서민석이 올시다.”
“알만허이, 네놈이 바로 팔공산살쾡이렷다, 그래 무슨 일인고?”
“어르신 눈에는 이 팔공산호랑이가 한낱 살쾡이새끼로만 보이십니까, 큰 실수하셨습니다, 좋은 말로 얘기할 때 이 차용증서를 믿고 돈 삼백만 원만 빌려주시면 일 년 안에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에끼 이 사람아, 땅문서라면 몰라도 볼일 없네.”
“그러시다면 이 총으로 저를....”하고 품안에서 권총을 꺼내 밀었다.
“돈 안 꿔주면 그만이지 사람은 왜 죽여?”
“좋습니다, 이도저도 못하겠다면 아드님 둘 중 하나는 내가 염라대왕한테로 데려가겠습니다, 원하신다 면 영감님을 먼저 데려가도 좋고요.”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아무튼 알았으니 내일모레 다시 오게.”
“고맙습니다, 복 받을 겁니다, 내일모레는 아랫것들을 보내겠습니다.”
역시 이은식은 거물다웠다.
“동무들, 오늘은 금호에서 자고 내일 청통과 신녕으로 들어갑시다.”
금호까지 십 리길을 걸어 시장 끝머리 소전과 맞물려 있는 국밥집의 뒷마당으로 들어가 깨끗한 봉놋 방을 골라잡아 앉으니 머리에 수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히데코(秀子)가 생글거리며 들어왔다.
“와이래 오래간만에 오셨능교?”
“사업차 일본에 좀 가있느라고, 이건 시세이도화장품인데 선물이오.”
“허머, 이렇게 귀한 것을....., 술상이라도 좀 봐올까예?”
“수육하고 소주를 좀 주시오, 그리고 옆방을 하나 더 비워두시오.”
방 하나를 더 비워두라는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장명등에 불을 밝힌 후 헛간에 서 몸을 씻고 속옷을 갈아입었다.
히데코는 새신랑이 안동소주 한 되를 마시고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바람에 첫날밤도 못 치룬 까막과부가 되어 친정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터져 나오는 신음을 삼키느라 ‘윽, 윽’ 하고 안간힘을 쓰더니 뜨거운 가죽방망이가 속살을 파고들자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온몸을 푸드득거리며 흐느끼다가 폭풍우가 지나 가고 비바람이 잦아들자 민석의 팔을 베고 돌아누우며 물었다.
“언제까지 숨어 다니실겁니꺼?”
“얼마 남지 않았어, 내년 여름에 새 세상이 오면 혼례를 올려야지.”
“이카다가 알라라도 생기면, 아이고 남세시러버라.”
밤새 회포를 푸느라 느지막이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히데코가 들어와 ‘서울대학교수 권승철이가 내 려와 방금 복판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병든 노인네와 씨름을 하는 것 보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에,
“권 교수, 실례하겠소이다.” 하며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누구신지......?”
“허허, 삼십년 친구를 몰라보다니 정말 섭섭하네, 날세, 민석이.”
“아니 이 친구, 행색이 이게 뭔가, 꼭 악질지주 같은 차림을 하고.....”
“웬일인가, 첫사랑 히데코를 보러 왔는가?”
“싱겁기는,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전보를 받고 밤차로 내려오는 길일세, 아침밥도 먹고 장도 좀 봐가지고 가려고...”
“자네가 쓴 ‘국사대요’는 잘 읽어보았네, 해방 후 첫 국사책이라 그런지 민족주의 냄새가 풀풀 나더 군, 역시 자네는 천재야, 그 좋은 머리로 사회주의혁명의 불씨와 마중물이 되어야 하는데 정말 아깝 다, 아까워.”
“날 설득할 생각은 말게, 나는 좌도 우도 아닌 민족주의자일 뿐이야.”
“나보다 먼저 사회주의운동을 시작한 자네가 이제 와서 수정주의회색분자가 되다니, 오호통재(嗚呼痛 哉)라, 아아 슬프고 원통하도다.”
“객쩍은 소리 그만하고 제발 살인방화는 그만두게, 사람이 할 짓인가, ‘좌파가 도덕성을 잃으면 범죄 집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게.”
“살인과 방화는 우익이 먼절세, ‘자본주의가 타락하면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말도 있네, 오늘 면장어른을 뵈러 가려든 참이었어.”
“왜, 아버지께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식구들 월동비가 필요하니 어른께 예기해서 백만 원만 빌려주게.”
“자네에게 돈 빌려줬다가 경찰에게 몽둥이찜질은 누가 당하고?”
“내가 좌익의 수장이긴 하나 내 맘대로 안 되는 것도 있네, 거절하면 어른은 물론이고 자네 목숨마저 보장을 할 수 없어 내가 나선 거야.”
“흥, 드디어 빨갱이 본색이 들어나는군, 칠십 노인을 두고 흥정을 하자는 거야 뭐야, 우리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데.....”
“내 뜻이 아니야, 이미 다리는 건넜고 세상은 바뀌게 돼있네.”
“그럼 어느 놈의 뜻이야!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나와는 상관없네!” 이때 문밖에서 ‘손님, 언성을 좀 낮추시지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기가 안 되겠군, 나는 다만 자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을 뿐이야.”
“고양이가 쥐 걱정 하고 있군, 빨갱이들을 먹여 살릴 돈이 필요하면 너희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김일성이나 스탈린한테 가서 내 놓으라하게, 우리 같은 악질반동한테 구걸하지 말고!”
민석이 자기 방으로 돌아와 ‘푸-’ 하고 한숨을 내쉬는데 히데코가 방문을 열고 ‘소가 새끼를 낳다가 죽었다고 사람이 왔는데요’라고 했다.
눈짓을 하여 경호원을 내보냈더니 사색이 되어 돌아와,
“위원장동지, 어제 새벽에 검둥개(경찰)들이 나무꾼을 앞장세워 아지트를 덮쳤답니다.”
“뭣이! 피해는?”
“인명피해는 없이 일단 제일비상선으로 철수하여 대기 중이랍니다.”
“허, 그렇다면 지금까지 밥을 굶고 있을 것이오, 중노미에게 소 판돈을 주어 청년단원들의 눈에 안 띄게 쌀과 떡, 찬거리 등을 사모아 국밥집 헛간에 갖다두라하고 우리는 빨리 소미기 목장으로 갑시다.”
권승철 교수는 국밥집을 나와 의사를 찾아 아버지의 병세를 물었다.
‘이삼일에 한 번씩 왕진을 가보는데 심장병이 악화되어 약과 주사로 연명은 하고 있으나 오늘내일 돌아가실 병은 아니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금호장에 들러 소고기 두 근과 아버지가 좋아하는 굴비 한 두름을 사서 보스턴가방에 넣었다.
고향집까지는 십 리길로 철도후미끼리(건널목)를 막 넘어서는데,
“면장님 댁 서방님 아니신교?” 하고 빈 지게에 간 고등어 한손을 매단 총각이 인사를 했다.
“그러네만 누구시더라?”
“지는 신덕동 서당골에 사는 조병철이라 카는데 우리아부지는 귀자 현자를 씁니더, 가방 이리 주이소 지가 지고 가겠심더.”
“고맙네, 아버지는 잘 계시나, 귀현이가 이렇게 큰 아들이 있었구나.”
“산 손님 등쌀에 잘 기시지도 못합니더, 오늘도 쌀 선 낱 있는 거 안 뺏길라고 장에다 내고 오는 길입니더.”
“그래, 빨갱이들이 어디까지 내려와 분탕질을 하느냐?”
“금호까지는 못 오고 와촌, 청통, 신녕면은 지 나라라고 설쳐댑니더.”
사일못둑에 올라서니 누렇게 익은 금호들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세상은 어수선해도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금호평야와 강 건너 과수원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웠고 언제 봐도 돌아와 안기고 싶은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고향이었다.
고향마을인 대평동과 신덕동은 주로 쌀과 담배농사를 하고 있는 평범한 농촌마을로 행정구역상으로 는 청통면이었으나 지리적으로나 생활여건상 모두 금호면에서 장을 보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다시 사일못 오 리길을 꾸불꾸불 돌아 집에 도착하여,
“아버지, 승철이가 왔습니다, 몸은 좀 어떠신지요.” 하고 큰절을 했다.
“어미와 애들은 무탈 하냐, 큰 애기 일을 매듭지으려고 오라고 했다.”
“뭐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닌데 그게 쉽게 결판이 나겠습니까?”
“살아갈 방도만 마련해주면 이혼을 해주겠다고 제 입으로 말했으니 잘 구슬리면 이번에는 도장을 받아낼 수 있을 거야.”
“그게 정말입니까, 조건이 있을 거 아닙니까?”
“집 한 칸하고 논 열 마지기는 줘야 안 먹고 살겠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더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오늘 서민석이를 만났는데 빨갱이들 월동비에 쓴다고 아버님께 백만 원만 빌려 달라고 합디다.”
“쌀 백 가마 값이네, 그놈 배포한번 크구나, 그래 뭐라고 했느냐?”
“빨갱이들 먹일 거라면 김일성이나 스탈린한테 가보라고 했습니다.”
“내가 일제 때 면장을 하고 이만한 재산을 가졌으니 그러겠지, 너한테 그런 말을 했을 때는 필시 그 만한 곡절이 있을 터, 비록 빨갱이지마는 나는 그놈을 믿네, 내일 금융조합에 가서 돈을 찾아오게.”
“안됩니다, 경찰이 알면 큰일 납니다, 무시해버리십시오.”
“아닐세, 그놈들은 너를 노리고 있어, 민석이를 직접오라고 하게, 내 당부할게 있으니, 서울에서는 북한이 쳐내러 온다는 소문이 없느냐?”
“더러 그런 예기가 오가고 오늘 민석이도 그와 비슷한 말을 했지만 원자탄을 가진 미국이 버티고 있 는데 설마 전면전이야 붙겠습니까?”
“민석이 놈이 저렇게 날뛰는 것을 보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보험 드는 셈치고 돈을 내 주게, 자식을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버지의 왕고집을 꺾을 수 없어 그쯤하고 아내 방으로 건너갔다.
“아버지께 들었는데 이혼을 해주겠다니 정말 면목 없고 고마운 일이오.”
“나도 숨이 막혀 이대로는 더 못삽니더, 못 밑에 있는 논 스무 마지기와 금호에 기와집 한 칸 살 돈만주면 내일이라도 당장 뜨겠습니더.”
“왜 이렇게 서두는 거요, 아버지 병구완은 누가하고..., 농지개혁으로 남은 논이 겨우 그것뿐인데 몽땅 다 가져가면 아버지는 어떡하라고....”
“담배 밭이 만 평이나 되고 금융조합에 맡겨 놓은 돈이 천지삐까린데 뭐가 걱정인교, 인자 대학 나온 서울 며느리도 시아부지 똥오줌 좀 받아보라 카소, 나는 그 많은 농사 뒷바라지에 아부님 병수발까지 해가며 서방도 없는 시집살이를 이십년이나 했으니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소, 우리는 얼굴한번 못보고 결혼을 했고 거기다가 자식마저 없으니 우리의 인연은 이쯤해서 끝을 내고 당신도 한 살이라도 적을 때 좋은 사람만나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사시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눈먼 새도 안쳐다 볼 나이에 이제 와서 무슨 팔자 고칠 일이 있다고.....”
“아직 마흔도 안됐는데..., 논문제는 아버지와 의논을 해 보리다.”
언제나처럼 사랑방으로 건너와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올 리 없었으며 이혼을 하면 서울아내와 함께 고향나들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학교에서 민석이와 일, 이등을 다투며 히데코를 좋아했던 일, 중학교 때 사회주의사상에 심취하여 퇴학을 맞고 열여덟에 결혼을 하자마자 일본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난 것, 경성제대시절에 클래스메이트였던 서울아내를 만난 것 등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자본주의가 타락하면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민석의 말이 아직도 귓전을 맴돌고 있었으며 좌파와 정책경쟁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할 텐데 무조건 빨갱이로 매도하고 경찰력으로만 밀어붙이니....
막 잠이 들려는데 아래채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더니 검은 그림자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누, 누구요, 억, 으윽-.”
농사꾼으로 변장한 팔공산유격대장이 목장으로 내려왔다.
“취사당번이 새벽에 오줌을 누러 나갔다가 나무꾼을 앞세운 경찰이 새카맣게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총 한방 쏴보지 못하고 후퇴를 했습니다,”
“나무꾼을 응징하되 죽이지는 말고 불만 지르시오, 월동비모금도 차질이 생겼으니 지주들 집에도 불을 질러 일단 겁을 주도록 하시오.”
“예, 보현산에도 선을 띄우겠습니다, 대원들이 이틀째 굶고 있는데...”
“쌀과 부식을 가지러 갔으니 곧 도착할거요, 사람을 죽이면 경찰을 불러들이는 빌미가 되니 조심들 하시오, 나는 내일 대구에 나가 경북도당위원장을 만나보고 다시 기별하리다.”
민석은 북성로 철물상에서 수금한 돈을 도당위원장에게 내놓으며,
“멀지 않아 남조선천지가 붉은 깃발로 덮이고 우리세상이 올 테니 올겨울만은 꼭 살아서 넘기라고 하시오.” 하고 간곡히 부탁했다.
“서 동지 고맙소, 돈은 빨치산을 거느린 군당위원장들에게 나누어주고 박헌영 동지에게도 보고를 하겠소.” 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박헌영에게는 보고할 필요가 없소이다, 그는 이제 남로당당수도 아니고 우리를 버리고 북으로 도망 간 비겁자요, 평양에서 새로운 조선로동당지도부가 구성되었으니 앞으로는 그 지시에만 따르도록 하시오.”
선걸음에 통근열차로 영천역에 내리니 어둠살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은식의 집 주위를 몇 바퀴 돌았으나 이상한 징후가 없어 경호원이 들어가 삼백만 원을 순순히 받아 나와 어둠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은식이가 역시 물건은 물건이야, 그 자린고비가 이렇게 큰돈을 선뜻 내주다니, 얼마나 조마조마했 는지 불알이 콩알 만해졌습니다요.”
“그 돈은 아들의 목숨 값이오, 수고했소, 금호까지 싸게 걸읍시다.”
한 시간을 걸어 장터국밥집에 도착하니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장날도 아닌데 웬 손님들이 이렇게 많소?”
“하이고 말도 마이소 비상입니더 비상, 지난밤 와촌에 공비(공산비적)들이 내려와서 마을을 불태우고 동네사람들을 다 죽였다 안 캅니꺼.”
“허, 이거 정말 야단났군, 어디 가서 석간신문을 좀 구해오시오.”
신문을 보니 일면 톱으로 ‘어제 저녁 10시경 경산군 와촌면 박사동에 팔공산공비 삼십여 명이 내려 와 청장년 40명을 창과 칼로 찔러죽이고 가옥 100 여 채를 불태웠는데 이유인즉 마을주민들 중에 공비들의 아지트를 경찰에 신고한 자가 있어 그 보복인 듯하다’고 했다.
박사동을 피해 소미기골짝으로 가기위해 이튿날 아침에 기차로 동촌역에서 내려 공산면을 통해 음양재를 넘어 목장에 도착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오, 대장동무도 같이 있었소?”
“예, 그저께 밤에 박사동에서 나무꾼들을 색출하려고 줄뒤짐을 했으나 아무도 모른다기에 마을사람들이 숨겨주려고 작당을 한 걸로 착각해서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모든 게 다 제 불찰입니다.”
“나무꾼들은 애초에 그 동네 사람이 아니었소, 그렇게들 아둔해서야, 내가 살상은 안 된다고 그만큼 이야기 했거늘 한두 명도 아니고.....”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사단(事端)이 생겼습니다, 그날 밤 청통면 대평동에서 권상돈 전 면장의 아들인 서울대학교수가 고향집에 다니러 왔다가 무참히 살해되었습니다.”
“뭐라꼬! 어느 놈의 짓이오?”
“우리와는 무관한데 탐문한 바에 의하면 사랑채가 불타고 권 교수가 처참하게 죽어있었으며 동네사람들이 빨갱이들 짓이라고 하더랍니다.”
“어허, 이거 꼽다시(고스란히) 우리가 뒤집어쓰게 되었군,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야 없지 않소, 뭐 짐작되는바가 없소?”
“동 세포의 말로는 별거중인 권 교수의 본처가 머슴과 배가 맞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고 최근에는 씨앗까지 가진 것 같다고 했답니다.”
“저런 때려죽일 연놈들을 봤나, 그 아까운 사람을.....”
“낫으로 난자하고는 불을 질러 우리에게 덮어씌운 겁니다, 본처가 전 재산을 다 차지하면 머슴은 곧 장땡을 잡은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옳소, 틀림없소, 초상을 치루고 나면 두 연놈을 반드시 단죄하시오.”
“곧 경찰의 총공세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정찰기가 삐라를 뿌리며 몇 바퀴 돌고 갔습니다, 투 항하면 불문에 부친다하고.”
“아지트는 파괴되고 비축미도 뺏겼으니 여기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소, 보현산과 군위유격대에 분산 의탁하여 올겨울을 지내고 내년 봄에 다시 옵시다, 비용은 내가 부담할 테니.”
“위원장동지의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워낙 큰 사건이라 수령님께 보고는 해야겠는데 참으로 난감하오, 동무는 엄청난 반혁명적 과오를 범 했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빨치산과 인민이 일사불란하게 봉기를 해야 하는데 빨치산은 물고기고 인민은 물이라는 걸 왜 모르오, 물 없는 물고기가 어떻게 살 수 있겠소?”
“책임을 통감하며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날저녁 한방의 총성이 소미기골의 산울림이 되어 퍼졌고 빨치산들의 오열 속에 유격대장이 권총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목장에 전해졌다.
비보를 접한 민석은 소주에 취한 채 평양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했다.
‘단기 4282년 11월 29일 저녁 9시경 경북 경산군 와촌면 박사동에서 이승만 도당의 학정에 항거하는 남반부의 애국인민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반동분자 38명을 처단하고 가옥 108채를 불태웠으며 이 과 정에서 강동정치학원출신 팔공산유격대장 엄종섭이 동료대원의 유탄에 맞아 사망했음’ 이라고 적은 보고서 위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탕, 탕, 총소리가 나더니 ‘우리는 경찰이다, 너희들은 독안에 든 쥐다, 즉시 항복하지 않으면 불을 지르고 몰살 시키겠다’ 하는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동무들 일어나시오, 포위된 것 같소, 일제히 엄호사격을 해 주시오.” 하고 민석은 돈이든 륫쿠삿쿠 (배낭)를 방패삼아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갓바위를 향해 냅다 치달리다가 외양간에 잠복해있던 경찰의 집중사격을 받고 인민공화국만세를 부르면서 숨을 거두었으며 새벽하늘에는 별똥별 하나가 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팔공산살쾡이가 사살되었다는 소식에 지주들은 저승사자를 따돌린 듯 안도했으나 일부주민들은 애석함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히데코와 중노미가 울며불며 벌집이 돼버린 민석의 시신을 수습하여 영천읍내로 넘어가는 땀고개의 양지바른 곳에 묻고 있는데 기러기 한 떼가 북쪽을 향해 끼룩끼룩 울며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