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애게 소설제] 참가하실 분?
게시물ID : animation_2555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ampo
추천 : 7
조회수 : 382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4/07/31 18:13:43
제가 2년 전에 있었던 커뮤니티에서는 가끔 소설제같은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거기에 참가하면서 글쓰기 경험도 쌓고 많이 배웠죠. 
근데 오유에는 소설제 같은 이벤트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책게에서 병신백일장이 열리긴 했지만 제가 원하는 주제와 분위기는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한 번 열어보려고 합니다.   

[애게 소설제]
계획안

1. 소설제 규칙.

-정해진 기간동안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소설제에 참여하고 싶다면, 제목에 [애게 소설제] 를 붙여야 합니다.

-노골적으로 선정적인 묘사가 폭력적인 묘사는 자제해주세요. 애게 신사분들은 이런 제한이 있어도 충분히 흐뭇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인터넷 자료라는 특성상, BGM, 사진, 동영상 따위를 넣을 수 있습니다. 모두 허용합니다만, 소설제라는 취지에 맞게 텍스트를 보완하는 역활로만 사용해주세요.

-1인 1회의 참가 기회가 있습니다. 오유에 있는 모든 회원 분들이요.

2. 소설제에 참여해서 무슨 이득을 보는가?

-모든 작품, 혹은 추천수가 높은 순으로 10개의 작품을 읽고 감평해드립니다.

-다른 분들도 댓글로 감평을 달아 주실 것입니다. 아마도. 

-그러니 자신이 쓴 글을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남들이 쓴 글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개이득

3. 어떻게 써야 하는가?

-내용:
팬픽도, 오리지날 소설도 됩니다. 단편도, 중편도, 장편도 상관 없습니다. 정해진 기간만 지킨다면요.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든, 한 번 짧게 보고 웃음을 터뜨릴 글도 상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애게 센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아래 예시 작품을 봐주세요.

-분량:
어떤 분들은 다섯 줄짜리 소설을 쓰시고, 어떤 분은 A4 다섯 장 정도의 분량을 써내시더군요. 분량은 자유입니다만, 정해진 기간 안에 마칠 수 있도록 해야겠죠.

-기간:
이건 계획안입니다. 만약 참가하겠다는 사람이 열 명 이상 있다면 적당한 때를 잡아 소설제를 시작할 것입니다. 기간은 그 때 정하도록 하죠.

4. 예시.

제가 몇 년 전에 어떤 커뮤니티 소설제에 올린 게시글입니다. 
2012년 10월에 쓴 글이네요. 최소한 워드에서 '만든 날짜'는 그렇게 나옵니다.

=======================================================

매드사이언티스트와 괴물

 

초인종을 눌렀다. 두 번. 조그맣게 대답이 들렸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급하게 이쪽으로 뛰어오는 발소리와 뒤섞였다. 대충 "네에!" 하고 소리치는 것 같았는데 말이지. 나한테는 항상 '지원군이 왔다!' 아니면 '네 정체를 밝혀라!' 따위를 큰 소리로 외쳐대는데, 아무래도 내가 온다는 것을 까먹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먼저 연락하고선.

신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린다. 집주인이 현관으로 나와, 문 손잡이를 잡고 반쯤 돌린다. 이제 문이 열릴 차례이거니 하고 현관에서 조금 물러섰건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시의 침묵.

연속된 행동에서 불연속인 부분이 발생하면 어쩐지 기분이 불편해진다.

마침내, 문이 조금 열린다. 문고리를 잡고 있는 손이 보인다. 예쁜 손이다. 여자의 손이 남자의 눈에 예쁘게 보이지 않는 일은 없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감싸주고 입술을 맞출 가치가 있는 손이다. 다만 손등 위로 길게 남은 붉은 자국이 거슬린다. 나는 스스로의 몸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그녀에게 한 소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을 잡아당기지만... 열리지 않는다.

조금 세게 당겨봤다. 문짝이 조금 더 열리나 싶더니 도로 쾅 닫힌다. 이윽고 다시 조금 열린다. 안쪽에서 문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새로운 장난이야?"

애써 장난스럽게 묻는다. 지금 상태에서 억지로 웃기는 힘들다. 시험을 망치고 보고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내 기분은 이미 바닥 상태에 도달해 있고, 다시 들뜬 상태로 올라가기는 당분간 힘들다.

"저기..."

"?"

내가 응?이라고 물은 것은 중의적인 표현이다. 하나는 얘가 이렇게 양해를 구하며 말을 시작한 것에 대한 의문이고, 또 하나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뭔가 꾸물거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낙지를 양손에 쥐고 있는 힘껏 주물럭거릴 때 나는 소리 같다고 할까.

"놀라지마."

"?"

그리고 그녀는 문을 벌컥 열었다. 문 바로 앞에 서있다가 문짝타격(치명적)을 맞을 뻔 했다. 결국 나도 화낸다. 아니, 화를 내려고 했다.

"놀라지 말라고 했잖아."

그녀가 말한다. 그리고 꾸익뿌익하는 괴상한 소리. 나는 입을 조금 벌렸다가, 다시 다무는 것을 까먹고야 만다.

그녀는 실험복을 입고 있다. 체육복 바지와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위에 흰색 실험가운을 덧입은 상태. 이곳이 실험실에 맞닿은 기숙사이며, 생물학 실험실 안전 규율을 무시했다고 사감에게 꼰지를 룸메이트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서 가능한 복장이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더니, 슬슬 집안으로 뒷걸음질친다. 나는 거기 가만히 서있다.

그녀의 반 테 안경에 묻은 끈끈해 보이는 액체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 이상으로 시선을 올리는 것은, 물리학도인 나로서는 무리.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무리. 이성을 가진 나로서는 무리다.

"들어와."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녀의 기숙사 문에서 반대방향으로.

"어디 가는 거야!"

"교수님께 말하고 말겠어, 그 다음에는 천주교 신부님을 찾아갈 테다! 날 막지마, 이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아! 난 세계종말을 막겠다! 으아아아아!!!"

결국 그녀는 날 붙잡고 질질 끌고 들어갔다. 마치 먹잇감을 낚아채는 문어처럼.

 

그러니까, 이 문어는 그녀의 피조물이다.

나는 여전히 그녀로부터 시선을 피하고 있다. 그녀의 말에 일일이 대답하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녀가 날 끌고 들어올 때... 아니, 납치할 때 내 뒷통수에 잔뜩 흘러내린 점액질의 미끈거리는 감촉을(화장실로 들어가 수건으로 닦아낼 때는 이미 목덜미까지 내려와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다시 매만지고 있었다. , 마침 머리를 자를 때도 되었지. 이번에는 좀 짧게 쳐야겠다. 아니면 아예 밀어버리는 것도 좋겠지.

"...듣고 있어?"

"듣는다는 것이 네 성대에서 나온 음파가 내 고막을 진동시키는 것이라면, 그렇다고 하지."

그녀는 입술 끝이 조금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대답은 '아니'잖아."

"만약 듣는다는 것이 네 성대에서 나온 음파가 내 고막을 진동시키고 그 정보를 내 뇌가 분석해서 어떤 논리...논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라면, 내 인생에서 가장 명확하고 거리낌 없는 부정을 할 수 있다! 내 인생에서!"

"와아아."

그녀는 입술 끝의 비틀림을 풀고 아이처럼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 조금 튀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달라는 뜻이구나!"

결국 그녀는 다시 설명했다.

 

우연히 줄기세포를 얻었다. 그녀는 마침 흥미로운 실험을 기획하고 있었다. 영양배지에 줄기세포를 올려놓고, 계대배양을 하면서 양을 늘렸다. 일단 충분한 양이 모였다고 생각하자(도대체 그 충분한 단위가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kg단위였을지도.)줄기세포에 바이러스를 넣어 핵을 변이시켰다. 이 바이러스는 핵에 들어가 세포의 성장 주기를 변화시켜, 세포 분열이 제어가 되지 않게 만든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암세포라고 할 수 있다. 이 줄기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분열과 거의 동시에 분화하면서 괴상망측한 모양으로 자란다...아니, 자랄 것이다, 라고 그녀는 예측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괴물(freak)쇼에 출연시킬 수 있겠더라고. 마이크로괴물쇼라면."

"그 실험체들 아직도 가지고 있어?"

"아니."

그녀는 말하면서 자기 머리 위를 쿡 찔렀다.

"다 여기 있을걸?"

난 조금 더 뒷걸음쳤다.

 

실험 레포트를 작성하고, 교수에게 제출했다.

"좋아하더라."

그녀가 간단히 말했다. 그 짧은 말 속에서, 나는 그 교수라는 놈이 내 하나밖에 없는 XX염색체 친구에게 연정을 품고 있지 않나 의심했고, 그 다음엔 그 자식이 학계에 그 레포트를 제출하면서 자신의 연구라고 주장하진 않을까 걱정했다.

실험은 끝났고, 결과도 좋았다. 그렇다면 이제 실험기구를 정리할 차례였다. 영양배지 찌꺼기가 남아있거나 죽은 줄기세포 표본이 엉겨 붙은 배양접시를 닦고, 정리하고, 실험실 사용 후 보고를 작성하는 등의 귀찮은 일들이었다. 제대로 된 양심과 상식이 있는 생물학도라면 그날 처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실험실을 넘겨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냥 자러 갔다.

"며칠 동안 수면 부족 상태였거든."

눈 앞에서 내 하나밖에 없는 XX염색체 친구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무책임한 녀석이지만, 이해해 줄 수 있다. 고된 실험이었을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배양접시를 관리하는 것은 힘들다. 그녀가 모든 배양기를 독점한다고 해도... 이 대목에서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끈끈한 콧물 같은 것을 흘리는 물체를 한 번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젠장. 커다랗긴 했지만 전혀 아름답거나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만, 그만. 변명은 필요 없어. 이 망할 자식이 어떻게 자라났고, 어떻게 네 머리 꼭대기에 달라붙었는지만 설명해, 제기랄. 가까이 오지 마! 제발!"

 

설명은 간단했다. 배지를 청소하며 적당히 분화된 실험체를 한 접시에 담았다.(아마 한꺼번에 버리거나, 기념물 삼아 보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종종 그랬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면서 꾸벅꾸벅 졸았고, 결국 배양접시를 깨뜨릴 것 같다는 생각에 옆에 있던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수돗물은 껐고, 고무장갑도 벗었어. 세척제 뚜껑도 닫았네. 잘했지?"

"농담도."

난 손을 휘적였다.

"그러니까, 일어나 보니까..."

". 이 문어가 내 머리 위에 올라와 있더라."

나는 마치 고기(특히 지방질)로 만든 모자처럼 그녀의 머리에 푹 달라붙은 생물체를 다시 쳐다봤다. 이건 일종의 시련이었다. 광기에 이르지 않는 시련은 내 정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겠지. 힘들지만, 결국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부정형의 물체. 겉은 창백한 회백색(저게 회백질은 아니겠지. 저게 뇌는 아니겠지.), 속에 비치는 옅은 그물 무늬는 아마 핏줄.(저게 뇌처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뇌이기 때문에?) 꽤 탄력적인 외피가 몸뚱이 전체를 덮고 있지만 물리적인 지지대는 없는지 그냥 축 늘어져 있다. 고무풍선에 든 물처럼.(저게 뇌라면, 누구의 뇌일까.) 그렇게 많이 흘러내리진 않는다. 아마 보통 풍선 두 세겹 두께의 풍선에 물을 채우면 저렇게 될까? (제발 저게 너의 뇌라고는 하지마렴, 친구여.) 중요한 것은 이게 어떻게든 살아있다는 것이고, 꾸물거리는 연동 운동을 하며 투명하고 끈끈한 점액질을 계속 내뱉고 있다는 것이다. 그 회백색 외피는 점액질에 젖어 번들거린다.

계속 쳐다보고 있자니 뭔가 서로 마주친 것 같다. 나의 표준적인(평균에 비해 다소 시력이 떨어지지만)인간의 눈과 놈의 머리...어디가 머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숙주의 이마부분에 있는 약간 거무튀튀한 부분. 나는 일생 최대의 자제력을 발휘해서 조금 다가가 그 부분을 살펴봤다. 앞으로 나아가니 거무스름한 부분 한 가운데 박혀있는 렌즈 같은 부분이 보인다. 왼쪽으로 두 걸음. 렌즈가 내 움직임을 따라 움직인다. 다시 오른쪽으로 두 걸음. 또 움직인다. 엄지 손톱만한 그 유리질은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아아.

저건 시각기관인가! 눈깔이 달렸다, 눈깔이! 아가리도 달렸겠지, 어디 달린 거냐!

나는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서서 곧장 친구의 얼굴을 향했다. 눈썹 선 위의 조금을 제외한 전체가 놈의 몸뚱이에 파묻혀 있었다. 게다가 자꾸 점액질이 흘러 내려오는지, 그녀는 눈가를 문질렀다. 끈끈한 물질이 손가락 끝에 길게 늘여 나왔다가, 툭 끊어지면서 조그만 방울을 튀겼다.

나는 기어코 광기로 향했다.

"저걸 네 머리에서 뽑아내고 말겠어! 저 망할 것이 네 머리를 통째로 씹어먹으려고 하잖아!"

 

짧은 시간이지만 이놈을 남에게 들킬 뻔 했다. 머리에 종이상자를 뒤집어쓰고(본인 말대로라면 종종 있는 일이니 다른 사람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 했지만... 왜 종종 종이상자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건가, 친구여.)실험실로 들어갔다. 내가 (종이상자를 뒤집어쓴)그녀의 손을 붙잡고 실험실로 들어올 때 두어 명의 학생을 마주쳤지만, 그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그냥 흘깃 보더니 걸어가 버렸다. 그녀가 내일까지 실험실을 쓸 예정이었기에, 안에는 다행히도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쯤 갈색 종이로 만들어진 종이상자는 점액질로 인해 생긴 자국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들키진 않았어. 이제 네놈을 저 종이 상자에 넣어주겠다. 이 일을 꼭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말 테야.

"그럼... 우선 내 전문분야부터 가볼까."

"으응? 네 전문분야가 뭔지 물어봐도 되려나?"

당연히 물리력이지.

나는 고무장갑을 팔뚝 끝까지 당겨 끼었다. , 이거 혹시 얘가 쓴 고무장갑인가? 어쩐지 기분이 묘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어쨌든 창조주의 도구로 죽임을 당해라, 피조물이여.

난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고무장갑 낀 손을 머리 위에 달린 불법점유자에게 향했다.

일단 쿡 찔러본다. 움푹 들어가는군. 집게 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뭉툭한 살점을 집어 이리저리 늘여본다. 상당히 탄력적인 물체다. (도저히''물체라고 부르기는 싫다.) 어린아이의 뺨을 죽 늘이는 느낌이다.

"이거 힘든데."

"뭐가?"

정작 당사자는 무사태평이었다. 본인이 산채로 먹히는 첫 단계를 진행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줘야 할까? 아니, 모르는 게 좋을지도.

나는 두 손으로 물체를 붙잡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조금 들리다 싶었지만, 머리 양 옆으로 축 쳐진 덩어리가 위로 올라간 것에 불과했다. 나는 조금 더 힘을 줘서 들어올렸지만, 곧 포기했다.

"아파! 와악! 아파아아! 그만, 그만해! 꺄야앗!"

피실험자가 대충 이런 식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마침 바깥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고, 나는 얼어붙은 채로(두 손에는 커다란 단백질 덩어리를 받히고) 잠시 서 있었다. 소리는 곧 지나갔으나, 문 앞에서 떠나기 전에 문과 바닥 사이에 조그만 쪽지를 끼워 넣고 갔다. 나는 잠깐 머뭇거리다 물체를 놓아버리고(그녀의 머리카락은 다시 살덩어리에 푹 파묻혔다.) 문가로 다가갔다.

 

-----------

실험실에서의 이성간 접촉은 원칙상 금지라네.

-----------

 

나는 쪽지를 가능한 잘게 찢어서 쓰레기통 안에 흩뿌렸다. 시간이 남는다면 남은 파편을 입자 가속기의 충돌 지점에 가져다 놓고 싶다.

그녀를 쳐다보니 앞으로 축 늘어진 살덩이를 뒤로 쓸어 넘기고 있었다.

"이거 자꾸 앞으로 흘러내리는데?"

아까처럼 당당하거나 무사태평한 어조는 아니었다.

"머리를 들어. 고개를 숙이니까 그게 앞으로 쓸려 내려오지."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는 아까 그 물체를 쓸어 올린 손을 들여다봤다. 점액질이 손가락에 잔뜩 묻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굴에도 조금 묻었고, 눈썹도 젖어 있다. 머리카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점액의 희생자였다. 흰색 실험가운에 금색으로 염색된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달라붙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진 것 같았다.

"무슨 생각해?"

내 질문에 그녀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영악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짓더니, 내 쪽을 향해 힘껏 팔을 휘둘렀다. 질퍽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지 밑단과 티셔츠에 끈적거리는 콧물 비슷한 점액이 잔뜩 묻어있었다. 무색 무취의 액체... 가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뭘 던진 거야. 이게 무슨 독성을 띌지도 모르는 일인데.

 

물리적인 방법을 포기하기로 했을 때, 우린 둘 다 지쳐서 헉헉거리고 있었다.(물체도 그 크기가 조금씩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 같았다.)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이라고 알아?"

"아니. 들어는 본 것 같은데."

"왜 있잖아, 그 반구 두 개를 붙여서 진공으로 만든 다음 거열형을 시도한 거."

", 생각났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머리에 달라붙은 물체를 살폈다.

"어쩌면 이놈이 기압차를 이용해서 네 머리에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닐까 해서. 그러면 분비액이 왜 나오는지도 설명이 되지. 양이 좀 많지만."

"그나마 투명한 색이라서 다행이네. 초록색이었으면 당장이라도 잘라냈을 거야."

나는 물체가 분비하는 액체가 흰색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무장갑을 벗고, 조금 이론적인 측면을 파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 ?"

, 어어? 라는 뜻 모를 소리를 지껄이면서 나는 몸을 돌렸다. 무의식 중에 그녀를 계속 보고 있었다. 점액질에 푹 젖어서 실험가운이 (정확히는 그 중에서 옷감이 한 겹으로만 된 얇은 부분이) 반투명하게 비치고, 그 밑에 입은 티셔츠의 색이 드러났다. 그녀가 검은색 티셔츠를 입어서 정말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헐렁한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남자와 여자의 몸매는... 글쎄, 미분 불가능과 미분 가능의 차이라고 해두자.

잡념이 쌓이니 얼굴이 점점 새빨개진다. 아마 귀도 같이 달아올랐겠지.

 

"그거 한 번이라도 써본 적 있어?"

". 개구리 머리 해부할 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중학교 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피부를 절개하고, 두개골을 절개하고... 순서가 틀린가? 일단 피부를 먼저 절개한 것은 틀림 없었다. 살갗도 자르지 않고 뇌를 뽑아내는 자는 과학 선생이 아니라 초능력자다.

"내 머리를 해부할 것이라고는 하지 말아줘."

"시도해볼게."

농담처럼 말했지만 내심 조금 불안했다. 실험실에서 찾아낸 메스의 칼날은 엄지손가락 한 개 마디보다 좀 더 긴 수준이었지만, 잘못했다가는 머리카락 일부분을 뿌리에 가까운 자리에서 잘라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는 정말 피하고 싶다.

내가 메스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갈 때, 형광등 불빛이 메스의 예리한 날에 비치면서 번뜩이는 섬광을 냈다. 타이밍 적절하군. 미치광이 과학자가 날붙이로 희생자를 (해부라는 명목으로) 저며내는 장면 같다. 그녀도 그것을 보았는지 갑자기 말했다.

"한 번 더 묻겠는데, 그거 한 번이라도 써본 적 있어?"

나는 메스를 든 상태로 가만히 서 있다가(그녀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아니'라고 조그맣게 말하며 들고 있던 것을 옆에 있던 해부대에 올려놨다.

 

어떤 일을 해내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나눈다.

단순하고 너저분한 방법(물리력으로 떼어내기)

단순하고 깔끔한 방법

복잡하고 너저분한 방법(메스로 절개하기)

복잡하고 깔끔한 방법.

 

난 지금 단순하고 깔끔한 방법을 시도하려 한다.

 

그녀의 이마에, 정확히는 차갑고 축축한 그 물체가 달라붙은 부분과 따뜻하지만 역시나 젖어있는 그녀의 이마의 경계선에 오른손을 댄다. 왼손으로 물체를 받히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과 놈의 몸뚱어리 경계선을 더듬었다. 그리고 놈의 몸뚱어리 안에 손가락을 파고들어 약간의 공간을 만들면서, 앞쪽에서 뒤쪽으로 놈을 벗겨냈다. 쑤욱하고 빨려 드는 소리를 내면서 손쉽게 벗겨진다. 나는 중간에 놈의 일부분이 그녀의 머리 어딘가에 구멍을 뚫고 파고들지는 않았나 확인했고,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보고 완전히 벗겨내서, 양손으로 들었다.

친구는, 정수리에 상당한 양의 점액을 묻히고선, 시원함을 느꼈는지 머리를 긁었고 미끌거리는 살덩이 대신 평소보다 더 윤기 있는(그러나 역시 미끌거리는.)머리카락을 벅벅 긁다가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우와!"

사실은 우왓! 과 우왕! 사이의 미묘한 발음이었지만,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여성의 감탄사는 의도된 것과 의도하지 않은 것에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의도하지 않은 감탄사가 훨씬 여성스럽다. 귀엽다.

그녀가 방방 뛰면서(동시에 점액질을 사방으로 튀기면서) 해방감에 날뛰는 동안 나는 방금 전까지 친구가 모자 대용으로 쓰고 있었던 물체를 내려다봤다. 붉은 빛이 도는 안쪽은 창백한 바깥쪽보다 훨씬 생기 있어 보인다. 더 끔찍해 보이기도 했고.

그리고 난 약속대로 놈을 종이 상자에 던져 넣었다.

 

이제 정리할 차례다.

놈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모르겠다, 라고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을 때, 나는 들고 있던 종이상자(50L 종량제 쓰레기 봉지로 보강되어 있었다.)를 흘깃 내려다봤다. 물체가 항의하듯 강하게 수축했다.

그녀는 계속 설명했다. 영양배지 위에서 자란 세포들은 너무나 나약하다. 스스로 움직이긴커녕 바이러스와 곰팡이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처지다. 실험자의 보호 없이는 대개가 죽고 마는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얘들은 뭉쳤고, 더 커졌고, 엄마를 알아보고 달라붙었다.(이 대목에서 나는 그녀의 자식들을 한 번 크게 휘둘렀다.) 그러니 자신은 이 아이들(이 대목에서 약간의 원심력을)을 받아들여(이 단어를 위해 불규칙한 가속도를) 잘 키우기로 결심(그녀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힘의 방향이 연속적으로 바뀌는 원운동을.)

"...하진 않았으니까 그만 좀 휘둘러!"

라고 그녀가 빽 소리를 질렀다. 나는 팔을 문득 멈췄고, 원운동에서 가장 높은 고지에 올라섰던 비닐봉투와 내용물이 중력을 받아 툭 떨어졌다.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으나 나는 (그녀의 아기들이라고 주장하는)물체를 주지 않았다.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바로 소각실로 달려가서 이 악마의 소산을 불태울 거야."

"좋아."

뜻밖에도 그녀의 뚱한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하지만 나도 볼래."

 

우리 둘 다 일단은 샤워를 했다.

뜨뜻한 물에 몸을 씻고,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새로 갈아입었다. , 나는 바지는 갈아입지 못했지만 윗옷은 벗었고, 대신 흰 색 면 티셔츠 위에 그녀가 빌려준 흰색 실험가운을 덧입었다.

뭔가 흥미롭거나 관심이 가거나 모르는 척 하면서도 계속 듣고 싶은 그런 이야기는 없다.

그녀가 샤워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가 자주, 오랫동안 누워 있었을 만한 소파에 앉아 조그마한 2인용 식탁 위에 놓인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쳐다봤다. 봉투가 버석버석 거리는 소리를 냈다. 방금 항구에서 사온 해산물 같다.

 

길을 나섰다. 적당한 공터를 물색했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그녀는 조금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얘를 태울 때 옆에서 인디언처럼 춤을 춰야겠어."

 

가솔린을 조금 부었다. 창백한 몸뚱이가 움찔거린다. 나는 곧바로 성냥을 그어 위에 던졌다. , 하고 솟아오르는 불길. 나는 나머지 성냥과 어느 호텔의 전화번호가 찍힌 성냥갑을 그 위에 집어 던졌다. 성냥이 오그라들면서 검은색 연기를 내고, 성냥갑은 점점 말라비틀어지다 물체의 몸뚱이 밑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그 물체는, 버둥거리면서, 자신에게 처해진 가혹한 운명의 마지막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고통스럽게. 숯덩이가 되는 길이다.

 

"내가 말했었나?"

숯덩이가 된 조그만 덩어리를 발로 차서 쪼갰다. 구워진 살점 사이에서 돼지고기와 매우 비슷한 냄새가 나서 깜짝 놀랐다. 신발 끝에 시커먼 자국이 묻었다. 이런. 나는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신발을 근처 잔디에 문질러 닦았다. 샛노랗게 말라 죽은 잔디에 약간의 명암이 더해진다.

그녀가 말한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따라가보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답한다.

"뭐를 말해?"

많은 것을 말했었지. 하지만 무엇을 말 안 했냐고 생각해보니 뭔가를 딱 집어 말하기가 매우 애매모호하다.

"이 줄기세포를 어디에서 구했느냐. 말했었어?"

, 그거. 답은 언제나 나와있다. 쥐나 돼지, 또는 인간에게서 추출한 줄기세포는 선착순의 신청자들에게 분배된다. 수요가 있다면 공급이 생기는 법. 줄기세포를 파는 의약기업은 널려있다. 이런 건 묻지 않아도 답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

"사람이야. 이건 사람의 배아였어."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그녀를 쳐다본다. 그리고 다시 돼지고기 냄새를 풍기는 물체를, 그리고 내 운동화 앞쪽을, 다시 그녀를. 입은 약간 벌리고, 머릿속은 창백해진다. 과거에 이 물체가 그랬던 것처럼.

 

 

생물학과 (정확히는 생물학과 계열의 무슨 과였을 텐데, 여기까지 말하면 우리 대학교의 이름까지 까발려진다. 안 돼.) 지도교수가 정직당했다. 사유는 '비윤리적인 실험'. 인간 배아가 원료인 줄기세포로 온갖 잔혹한 짓을 다했기 때문에, 또 그것을 논문으로 작성해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과학 단체에 제출했기 때문에. 온갖 논란을 다 거친 후에, 서면 경고를 넘어서 정직처분까지 받게 되었다. 그녀는 뜻하지 않은 5일간의 휴강과 새로운 지도교수를 얻게 되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나서, 길고 의심스러운 '흐으으음'을 하면서 그녀를 쳐다봤다. 내 시선은 무시당했다.

 

 

영양 배지에서 곱게 자란 세포가 스스로 움직여서 서로 뭉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정정하겠다. 불가능에 가깝다. 양자적인 확률을 제외한다면. 어쩌면 우리 둘은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0.00아래로 0이 무수히 많이 나타나는 살아남을 확률과, 9.99아래로 무수히 많은 9가 나타나는 죽을 확률 사이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멀쩡히 살아서 머리에 달라붙은 물체가 생긴 것을 관측한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 과학의 이단아를 태워버렸다. 중세의 무식한 농부들이 이웃집 처녀를 불에 구운 것처럼. 나는 가끔 생각한다. 가끔은 그녀와 나란히 앉아서, 마주 앉아서, 드물게는 같이 누워서 생각한다. 내가 그때, 어떤 영웅을 죽여버리지는 않았나. 불가능에 미치도록 가까운 상황에서 일어나, 연합해서, 하나의 독립적인 생물체로 자라난 그 어린 민중들을, 가솔린과 성냥불로 불태워 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

 대충 이런 분위기입니다.

애게 소설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반대를 맞아서 보류게에 가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반대수 10 이상이면 역시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