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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지루하지 않은 풍경
게시물ID : lovestory_853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3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07 18:28:2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new

BGM 출처 : https://youtu.be/s9brwV-uQlk





1.jpg

홍해리그물

 

 

 

어떤 자는

던지고

 

어떤 이는

걸리고

 

어떤 놈은

빠져나가는

 

세상이라는

허방







2.jpg

맹문재하느님의 등을 떠밀다

 

 

 

열한 살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아득한 길 위에 서 있었다

손사래에서 포옹까지

불안에서 왕성한 웃음까지

아랑곳없음에서 다행까지

나 혼자 걷기에는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마디가 운명을 되돌릴 수 있고

한 걸음이 운명을 붙잡을 수 있고

한 손이 운명의 화답을 받을 수 있겠지만

법칙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의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을

이모가 뒤따르는 것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달려가는 것을

삼촌이 파고드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먼 길에 그림자가 되어달라고

실직자인 고모도

고모가 들고 다니던 도시락 가방도

가방에 붙은 가냘픈 벚꽃도

벚꽃 둘레에서 부산을 떨고 있는 벌들도

수술실에 밀어 넣었다

벌들을 품은 하늘도

하늘의 옷을 입고 있는 하느님도

돌다리 앞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부처님도 떠밀었다







3.jpg

홍윤숙

 

 

 

창은 열려 있어야 한다

닫힌 창은 창이 아니다

환히 열린 창 앞에 서면

미지의 먼 나라들이

뭇별로 떠오르고

끝없이 아득한 길들이 나를 불렀다

나는 넓은 세상 길 위에서

수만 날을 꿈꾸며 떠돌았다

 

지친 여로의 날 저물고

아득한 마을 등불 켜지면

키 낮은 굴뚝에서

하얀 저녁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향집 그리워

 

거기 언제나 가슴 환히 열린 창

돌아갈 집이 있어

지상의 날들 비 오고 바람 차도

행복했다

 

영원히 열려 있는 자유의 출구

창은 날마다 떠나는 포구가 되고

수만 리 길 돌아가는

원항선의 등대가 된다

 

내 생애의 밝고 따뜻하던

그리운 창

나는 너의 창이 되고 싶다







4.jpg

박주택귀소

 

 

 

저 불빛들도 이제는 빛이 아닌 것으로 돌아가네

저렇게 깊게 자신이 아닌 것으로 돌아갈 때

여름은 더욱 깊게 파여 한여름이 되고

가로수는 가로수대로 잎사귀를 흔드네

 

낮과 밤이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너무 많이 돌아 만나는 가을에는

 

내가 아닌 것과 나인 것이

네거리에서라도 만날 것이지만

 

빛이 꺼지듯 잎이 지듯

불현듯 가을이 지나고 나면

나에게로 돌아오는 나 아닌 것들에게

슬그머니 눈을 감아 보리라







5.jpg

최영미지루하지 않은 풍경

 

 

 

어디론가 갈 곳이 있어

달리는 바퀴들이 부러웠다

앞만 보고 질주하다

길모퉁이에서 부드럽게 꼬부라지는

빨갛고 노란 불빛들이 부러웠다

 

비에 젖은 8차선 대로는 귀가하는 차들이 끊이지 않고

신호등을 읽었다면

멈출 때를 알았다면

나도 당신들의 행렬에 합류했을지도

 

내게 들어왔던내가 버렸던 삶의 여러 패들은

멀리서 보니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하얀 가로등 밑의 물웅덩이에 빗방울이 떨어져

보석 같은 빛을 탁탁 튀기며

지루하지 않은 풍경을 만들고

번쩍이는 한 뼘의 추상화에 빠져

8월의 대한민국이 견딜 만한데

 

이렇게 살아서불의 계절을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비 오는 밤을 젖지 않고

감상하는 방을 주신 신에 감사하며

독한 연기를 뿜었던 입 안을 헹구고

내 밑에서 달리는 불빛들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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