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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을 주었다 #3
게시물ID : panic_853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아저씨
추천 : 23
조회수 : 169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2/29 20: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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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의자에 힘 없이 걸터앉았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계속해서 솟구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크게 숨을 내쉬고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함부로 감정을 담아서 지켜보면 안 돼. 언제나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해. 원래 이런 업무인거야.
  의사들도 봐. 처음에는 환자가 죽고나면 괜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죽음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업무를 담당했던 주임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 때 당시 아무 것도 모르던 내게 상사로서 가벼운 조언을 내뱉은 것이겠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주임님 또한 업무 시절, 나처럼 그 의미없는 발버둥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죽은 사람들을 지켜봤을 것이다. 1분이라는 구원의 기회를 몇 번이고 주면서 주임님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지금 다시 주임님을 만날 수 있다면 꼭 한 번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주임님 때는 구원에 성공한 사람이 있었나요?


 주임님 생각에 잠기고 나니 그가 남겨준 메모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몇 줄 적혀 있지 않았지만 주임님의 업무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메모지였다.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서인지 군데군데 헤지고 너덜너덜해졌다.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손에 쥐고 내용을 읊었다.

 - 리스트의 정보를 꼼꼼히 읽을 것. 선하게 자라온 사람일수록 영업에 성공할 확률이 높음

 - 쉽게 넘어오지 않으면 영상을 한 번 더 보여줄 것

 - 1분을 계속 사용하도록 권유하고 용기를 북돋아줄 것

 - 환한 미소. 밝은 목소리. 친절한 응대


 읽으면 읽을수록 기가차고 어이가 없었다. 전형적인 영업직의 메모였지만 우리가 처한 업무는 그 방향성이 다르지 않은가. 그럼에도 내가 이 터무니없는 내용이 담긴 메모지를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이유는 하나다. 나는 절대 이렇게 영업을 하지 않을거라고.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반드시 내밀겠다고. 읽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일그러지기에 더욱 더 내 신념을 확고하게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내가 다짐한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어수선한 웅성거림이 밖에서 들려왔다. 궁금한 마음에 살짝 문을 열고 쳐다보았다. 검은 그림자들 앞에서 머리를 쪼아리고 있는 부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이야기가 잘 안되었는지 연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대고 있었다. 그런 모습과는 대조되게 검은 그림자들은 미동도 없이 부장님 앞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부장님의 손길에 따라 검은 그림자들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조심히 문을 닫고 다시 책상앞으로 온 나는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회사 시스템 내로 들어가 아까 보았던 검은 그림자들의 고객정보를 확인했다. 일개 사원으로써 해당 정보를 열람할 권한이 없지만 주임이 남겨주고 간 ID와 password 덕분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VIP 고객들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몇 가지 기본 정보 외에는 공개되있지 않았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의 직업이었다. 하나같이 고위급의 간부직을 달고 있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자들이 어째서 우리 회사와 거래하고 있는지는 알 턱이 없지만 왠지 모를 구린 구석이 느껴졌다. 또 다른 정보가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려봤지만 별 다른 수확은 없었다.
 컴퓨터를 끄고 시계를 쳐다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기분 나쁘도록 찝찝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
 회사 내 다른 부서 사람들은 내 업무가 상당히 복잡할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사람의 목숨을 놓고 행하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의외로 프로세스는 단순하다.
 출근을 하면 누군가가 내 책상위에 리스트가 담긴 서류를 올려놓았다. 리스트에는 내가 영업을 뛰어야 할 사람들이 기록되 있었다. 그들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나이, 가족관계, 직업, 성장배경, 기타 등등 마치 이력서를 보는 듯한 정보들이 적혀 있다.
 나는 그저 이들 중에 몇몇만 리스트에 체크하고 책상에 놔두기만 하면 됐다. 그럼 오전중에 누군가가 서류를 가지고 간다.

 이러한 절차가 끝나고나면 오후부터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 본격적이라고 해도 이 또한 간단한 일이었다. 바로 1분을 주는 것.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오면 주변 모두 암전이 되었다. 내 책상에만 조그마하게 새어나오는 전등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잠시동안의 시간이 지나고나면 영상 하나가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 비 오는 날 우산 밑에서 서로 손을 꼬옥 잡은 커플,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영상들은 저마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 모두 오전에 리스트에 체크했던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곧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영상이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쥐고 입술을 물어뜯는다.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사람들, 다른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영상의 끝은 한결 같았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 그리고 죽음. 매번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사무실 가득히 채운 영상에 눈 돌릴 틈도 없이, 빠방하고 리얼한 사운드와 함께 관람해야만 했다. 
 이윽고 영상이 끝나고나면 내 앞에 그 영상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관람하는 동안 잔뜩 움츠러둔 몸을 태연히 정리하고는 그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들에게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 시켜 주어야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몇 번의 대화끝에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책상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또 다시 사무실 가득히 영상이 가득 펼쳐지고, 그 실감나는 영상을 보고나서야 사람들은 죽음을 인정했다. 절반 정도는 그 자리에서 그냥 미쳐버리고, 다른 이들은 흐느끼며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 때가 바로 내가 치고 들어가야할 타이밍이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도, 마음 따스한 위로도 필요 없다. 그냥 한 마디면 되었다.


 "다시 살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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