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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qlbPChyI2rw
이석현, 용접
온 몸으로 젖어 본 사람은 알 수 있지
보안경 너머로
삼천 도 불꽃 물의 길을 터 주면
두툼한 방열복 속으로
후끈 스며들던 고열의 마음들
서로 녹아 넘치도록 혼절해야만
한몸 되는 힘겨운 접목
뼈와 살을 녹여내는 아픔을
나눈 후 태어난 신생
기억을 가로지르는 고압선에서 나온
수많은 불티들을
온 가슴으로 막아내다가
지나온 길을 더듬어 균열을 살핀다
마음과 마음을 묶는 일이
얼마나 뜨거운 일인지
시뻘겋게 달아
온 몸으로 젖어 본 사람은 알 수 있지
문태준, 물끄러미
한낮에 덩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이 뾰족한 들쥐가 마른 덩굴 아래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갈잎들은 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다
오늘은 일기(日記)에 기록할 것이 없었다
헐거워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다
나는 식은 재를 손바닥 가득 들어 올려 보았다
임보, 상추쌈
상추에
흰 쌀밥을 놓고
쌈장을 얹어
입에 넣다 말고
한 여인을 생각한다
파란 상추에
파란 상추만을 놓고
쌈장을 얹어
입에 가득 넣던 여인
왜 밥을 함께 싸지 않느냐고 하면
쌈은 거섭이 제일이야 하며
웃어 넘기시던 어머니,
남은 식구들을 위해
식은 보리밥 덩이지만
그렇게 참으셨던 것을
어느 풍년든 해가 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파란 상추에
파란 상추만을 얹어
한 입 가득 물어뜯으며
이제는 그런 쌈도 못 자신
그분을 생각한다
강경보, 순간에 저물다
그냥, 쳐다본 일밖에 없다
동박새 아침 저녁으로 날고
눈썹날에 팔랑이는 바람 말고는
눈짓 한 번 준 일 없다
내 눈 밖에서
일생의 고요를 살던 동백꽃
내 한 번의 사랑을 받은 죄로
오늘
순간에 저물다
김종해, 황톳길
황간에서 상주, 상주에게 두원가는 길은
발바닥이 아프다
나는 여섯 살
배가 고파 하늘이 노랗다
가도가도 황톳길
나는 주저앉아 있고
뒤따르던 제비꽃, 애기똥풀꽃이
황토분 바르고
엄마 등에 업혀서 쉬고 있다
소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한 농부가
엄마의 미색에 반해서
여섯 살 나를 번쩍 들어 소 틍에 태웠다
무섭다고 악을 쓰며 나는 울었는데
발바닥이 아파도
배가 고파도
엄마와 단둘이 걷는 황톳길이
나는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