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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한 세계의 문이 닫힌다
게시물ID : lovestory_853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48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02 16:43:5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new
BGM 출처 : https://youtu.be/HDtwuDnCW7Q




1.jpg

장석남낯선 방에서

 

 

 

초저녁에

빗소리

들리기 시작한다

 

깊은 밤에까지 빗소리

평생 옥수수 농사만 짓는 사람의 발길처럼

오르락내리락 이어진다

 

새벽에빗소리

없다 빗소리 없고

파래진 창 모퉁이에

말간 손톱달이

갸글갸글한 숨결에 씻기고 있다

 

온몸이 그리운 숨결이다

온몸으로 그리운 숨결이다







2.jpg

고정희사십대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3.jpg

이태관파리 날다

 

 

 

조롱박 위를 구르던 바람이 어느새

창문을 넘었나 보다

며칠 째 펼쳐놓은 책갈피 위를 뒹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듯 살며시

책장을 넘긴다

그 사이 파리 날다

넘어지려는 한 세계 위에 앉아

가만히 그네를 탄다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와

마음이 가 닿는 그 간극

 

파리 날다

휘둘린 파리채에 제 몸을 낮춘다

 

한 세계의 문이 닫힌다







4.jpg

정병근나비와 길

 

 

 

나비가 앉았다 떠난

문지방이 반들반들하다

 

옛 선사가 파놓은 심지(心池)처럼

한 치 앞에 도달하기 위해

나비는 첩첩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이다

 

사방의 바깥을 헤맨 자만

길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

저 나비의 위태로운 행로는

안으로 이르는 바깥의 최단거리이다

 

만 리 길을 구불구불 돌아온

꽃향기가 코앞에 무성하다

 

아주 먼 길을 떠나거나

지금 여기에 당도하지 않는다면

무용(無用)의 한낮과 사방







5.jpg

홍해리막차가 떠난다

 

 

 

별이 우는 밤이면 막차가 떠난다

산도 울어 계곡따라 메아리로 흐르고

달빛 속으로 스러져가는

들판의 벗은 바람소리와 함께

마음을 싣고 막차는 떠난다

기적을 울리지 않고 가는 길

눈물 같은 별이 하나씩 길 위에 내리고

새벽은 올 것인가

쓰리게 흐르는 저문 강물이여

밤이 무거워 비껴서지 못하는

나목들 가지마다 걸려 있는

안개텅 빈 들녘해질 무렵열정

상처와 환희떨어진 꽃잎그리고

모든 존재란 의미이고 이름일 따름

속절없이 피었다 지는 것이 꽃뿐만이랴

하늘이 시작되는 곳이 어디인지

상처 받은 별떨기가 찔레꽃으로 피어나는

여름이 봄보다 먼저 왔다 가고 나면

가을은 슬프고 겨울은 눈부시지 않더냐

오늘은 첫눈이 내리고

나는 밤으로 가는 막차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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