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옥, 이제부터 누가
헤어지는 마당 미처 나누지 못했네
함께 따라와주던 얼어붙은 밤길
기꺼이 젖어주던 가랑비 골목
사랑을 받아 적느라 흔들렸던 사월의 잎사귀
바람이 흔들다 두고 간 초저녁
우리 것이 되지못해 하늘로 옮겨 앉은 별들
이제부터 누가 돌보아야 하나
옥경운, 친구
빙긋이 웃으며
내미는 네 손
말없이 잡았다
너는 왼손으로
내 가슴을 툭 치고
나는 네 백 마디의 질책보다
가슴이 더 아프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변명이라도 할 것인데
너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강성은, 나 없는 내 인생
내 집에는 혼자 사는 새가 있어
식탁 위에서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죽은 자들은 지루함을 모르고
산 자들은 침묵할 줄 모르지
내 집에는 혼자 사는 새가 있어
창턱에 앉아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내 집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어
내 노래를 듣고 춤을 추지
내 집에는 혼자 사는 새가 있어
지붕 위에 올라가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내 집에는 들리지 않는 노래가 흘러나와
밤이 되면 길 가던 사람이 멈추고 들여다보지
내 집에는 혼자 사는 새가 있어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내 집에는 혼자 사는 사람이 있어
방안을 걸어 다니며 귀를 막고 흐느낀다
내 집에는 혼자 사는 새가 있어
내 귓속에 대고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내 집에는 날지 못하는 새가 있어
밤이면 은빛 날개가 조금씩 자란다
오명선, 건망증
달 속에 태양이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모래알의 체온에서도 사막을 읽을 수 없었다
내가 있던 자리에는 내가 없고
우물이었던 젊은 날은 바닥을 보인다
수천만 년 묵은 바람은 돌 속의 수맥들 밟으며 명을 잇지만
내 기억은 백년도 살지 못한다
달짝지근한 날들을 되씹어보니
내 속을 빠져나간 내가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지직거린다
이문재, 마음의 지도
몸에서 나간 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언제 나갔는데 벌써 내 주소 잊었는가 잃었는가
그 길 따라 함께 떠난 더운 사랑들
그러니까 내 몸은 그대 안에 들지 못했더랬구나
내 마음 그러니까 그대 몸 껴안지 못했더랬구나
그대에게 가는 길에 철철 석유 뿌려놓고
내가 붙여댔던 불길들 그 불의 길들
그러니까 다 다른 곳으로 달려갔더랬구나
연기만 그러니까 매캐했던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