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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두 에세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시물ID : lovestory_852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황희두
추천 : 2
조회수 : 43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4/26 23: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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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얼마 전,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잠시 근처 놀이터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엔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선생님들과 서른 명 정도의 어린아이들이 해맑게 소리 지르며 뛰놀고 있었다. 나는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근처 벤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낡은 그네,

나름 모험심 강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정글짐,

가벼운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시소,

그곳을 해맑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참 좋을 때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멍하니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겨있던 나에게

갑자기 한 아이가 슬며시 다가와 쑥스럽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옹"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로 90도로 머리를 풀썩.

"네, 안녕하세요옹"

엉겁결에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따라 피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배시시 웃으며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가는 그 아이,

웅장하게 자란 나무 앞에 뒤돌아 서서 눈을 가린 채 이렇게 외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순간 '나와 놀자는 건가' 싶은 궁금증과,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 충돌하여 도무지 어쩔 줄 몰라하던 찰나

다행히도 근처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모든 신경은 그들에게로 향했다.

새록새록 피어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뒤돌아 눈을 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사이에,

출발선에서 천천히 다가가 술래를 치고 다시 제자리로 도망가는 놀이.

혹시라도 술래가 뒤돌아볼 때 움직이면 포로로 잡혀가 술래와 손을 꼬옥 잡고 있어야 한다.


혼자 심심한 술래는 어떻게든 포로를 잡기 위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천천히 외치다가 갑자기 빨리 외치는 꼼수도 부려보고,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으면 괜한 트집을 잡으며 포로로 곁에 불러오기도 했다.


사실 술래도 술래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포로와 술래 사이에서 밀당하는 아이에게 달려있다.


한 발짝 두 발짝 서서히 다가가다 보면

어느덧 술래와 포로 근처에 도착하는데,

언제든지 손을 끊을 수 있음에도 
괜스레 끝낼 듯 말 듯 장난을 치게 된다.


그렇게 술래와 포로 사이에서 시작된 밀당

이번에 칠까? 다음에 칠까? 그러다 아무때나 갑자기 툭!

술래와 포로가 서로 끊기는 순간 아이들은 있는 힘껏 출발선으로 도망친다. 술래도, 아이들도 전부 함박웃음을 지은 채로.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밀당은 그저 쓸데없는 감정 낭비란 사실을 느낀 탓에 당시엔 그토록 즐겁건 밀당 놀이도 이젠 피곤할 뿐이다.

그럼에도 자꾸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


아무 생각 없이 뛰놀며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며 순수했던 그 시절,

부모라는 그늘 아래서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30대를 코앞에 둔 지금의 나는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하기에.


그렇게 추억에 젖어 회상에 잠겨 있을 무렵,

어느 순간 선생님들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줄 서고 무리를 지어 어딘가로 향하는 아이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밀려드는 아쉬움. 마치 나의 어린 시절 추억도 아이들과 함께 서서히 멀어져 가는 기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들은 어딘가로 떠난 지 이미 오래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끌벅적했던 놀이터,

그곳엔 공허한 바람과 쓸쓸한 낙엽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다시 나를 찾아온 고독, 문득 떠오른 사실. 
어린 시절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호기심을 느끼고

휘날리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꼈던 기억.

이에 비해 너무도 무겁게만 느껴지는 어른 세계.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아무리 추억을 붙잡고 동심을 그리워해봐도

절대로 막을 수 없는 것이 세월이란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참을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흙장난으로  새까매진 탓에 부모님께 혼이 나던 순간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던 그때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리웠기에.


여전히 나의 귓가를 맴도는 한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해맑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외치던 그 아이.

출처 http://brunch.co.kr/@youthhd/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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