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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꽃 질 때 떠나 다행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852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24 18:41:36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new
BGM 출처 : https://youtu.be/9ueX-TCcUCY




1.jpg

김후란포도밭에서

 

 

 

네 입술을 장난스럽게 깨물면

입 안에 가득 고이는

감미로운 후회 같은 것

흑진주네 곤혹(困惑)의 눈빛을 피해서

넝쿨 사이로 빠져나오면

짙은 방향(芳香)

어깨 너머로

앵도라진 눈을 모으네







2.jpg

전태련조폭이 된 산

 

 

 

어느 날엔가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산의 뺨 위로 반월형 흉터가 생기고

그 위로 길게 칼금이 그어졌다

잘생기고 점잖던 그가 조폭의 얼굴을 하고

창문 밖을 서성인 지 오래

 

소가 핥은 것 같은 반원형 탈모가 생긴

그 위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딱딱한 시멘트 딱지가 앉았다

 

그 산이 흉측하게 변한 후론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산새소리풋풋한 산바람 향내 어디로 가고

매캐한 입 냄새를 풍기며 하루 종일 수다가 줄창이다

어스름에 밀려 한 발짝 물러앉은 저녁 산

밤새도록 누구에게 흠씬 뺨을 맞는지

여기저기서 번쩍이는 불빛의 행렬들

 

물안개 너울로도 잘 가려지지 않는

그 흉터자국

얼굴이 변한 산이 마음까지 변할까

하루에도 수십 번 눈길이 간다







3.jpg

진명주화무십일홍

 

 

 

꽃 질 때 떠나 다행이다

꽃 지고 마음 따라 지니 다행이다

한 번도 이 꽃 지지 않을 거란 생각 없었으니

다행이다 다행이다 예감은 언제부턴가 적중했다

꽃망울 가득한 나무 아래서

가고 오지 않는 시간에 대해 얘기하면

잔을 비울 때마다

시야를 가리는 건 화무십일홍

빈 잔 가득 청매화 홍매화 넘쳐난다

꽃 질 줄 알아 다행이다

주구장창 피어나는 이 사무치는 언어들이

팝콘처럼 펑펑 피어나면

감당하기 힘든 일

꽃 지니 좋다

가슴에 품은 나무 한 그루

오늘 꽃 지었으니

새들도 울지 않겠다







4.jpg

고경숙탁본

 

 

 

사랑에 눈먼 그가

돌아서서 나를 기다리네

 

인기척 없이 뒤로 다가가 꼭 안으면

탕탕 솜방망이로 심장을 두드리며

그의 등에 탁본되는 나

 

심장과 심장

입술과 입술이

이념보다 더 붉게 각인되어

 

지체된 사랑에 빠진 내가

삶의 제재가 되어버린

그의 시선과 음성을 해독하느라

절반의 몸이

먹물로 흘러내려도 좋으리

 

내 몸에 꼭 맞는

내 맘에 꼭 맞는







5.jpg

함순례일곱 살우주(宇宙)

 

 

 

바람이 들썩이는 호숫가

비닐 돗자리 손에 든 아이가

풀밭으로 걸어간다

신발 벗어 한 귀퉁이 두 귀퉁이

메고 온 가방 벗어 세 귀퉁이

마지막 귀퉁이에게 제 몸 내려 놓는다

 

삼라만상을

돗자리에 전부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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