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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내 생각] 68혁명과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유머
게시물ID : military_852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ffel
추천 : 5
조회수 : 49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2/24 00:53:37



1. 사회학이나 정치학을 배우다보면 현대사에서 가장 굵직하게 다뤄지는 내용이 있다. 68혁명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등 여러 서구의 나라에서 일어난 "구심점 없는" "광범위한" 형태의 시위였으며 우리가 흔히 아는 "권위주의 정권, 독재에 대한 항의"라는 성격보다는 사회라는 틀 안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여러 부조리에 대한, 문화적 형태의 저항운동이였다. 미셸 푸코는 그래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통치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68혁명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어떤 것은 가치있다고 평가할 수도 어떤 것은 낮다고 평가할 수도 있으며 키워드를 다르게 잡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68혁명의 가장 큰 틀은 "권위주의, 관료주의에 대한 반감." 과 사고 인식적 전환면에서 "이분법으로부터의 탈피."를 꼽고 싶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형식 민주주의뿐만이 아닌 대학, 직장, 병원 등등 사회 곳곳에서의 권위주의의 퇴출을 요구했다. 푸코의 표현처럼 그들을 더 이상 통치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더불어 사람들은 "국가"와 "시장"으로 대립되는 구시대적 "좌-우파"개념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신좌파"의 탄생이였다. 그들은 "마르크스 주의적" 노조와의 결별을 선언했으며 관료화된 노조에 반감을 드러냈다. 혁명은 항상 폭력적이여야 하며 정치권력을 쟁취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반대했다. 
계급투쟁뿐 아니라 사회의 저변에 개인들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의견들과 투쟁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신사회 운동의 출발점이였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말을 빌리자면 "해방의 정치에서 생활정치로의 전환."이였던 셈이다. 이후로 환경단체 운동, 여성단체 운동등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들이 주목을 받으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2.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완전무결하며 숭고한 가치를 지닌 무언가로 추앙하는 모습을 보인다. "민주주의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굉장히 애매모호하게 이리저리 열심히 설명하지만 결론은 "숭고한 것"이며 "지켜야 할 무언가"로 인식하며 신비화된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정말 숭고한가?" "민주주의가 말하는 인민의 의사와 공공선은 존재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저자인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이렇게 신비화된 측면이 있는 민주주의의 이상적 정의를 파괴하고 현실적 정의를 다시금 내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회학자 막스베버의 시각의 영향을 받아 "인민들은 정치적으로 유아"이며 "교화"될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인민에 의사"에 기초한 "공공선"을 위하는 "민주주의"란 몽상에 불과하며 "직업 정치인 집단"의 "사적 이익"이 "공공선"으로 포장되며 "민주주의"란 그저 이러한 "직업 정치인 집단"이라는 "엘리트 지배집단"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라고 정의내렸다. 그저 하나의 불완전한 정치체제의 한 형태이며 다른 체제와 똑같이 지배집단, 피지배 집단이 존재하고 약자와 강자가 존재하며 "인민의 의사" "인민주권" "공공선" 개념은 그저 지배집단이 피지배집단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감추고 정당성을 확보하는 도구로서 활용된다고 보았다. 완전히 부정하기도, 완전히 긍정하기도 힘든 사실이다.

그래서 서구사회는 형식 민주주의의 달성 이후 심의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단순히 국가 정치 형태에 있어서 "투표" 에 의해 공정하게 "의사 대표자"로서의 정치인들만을 선출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집단이 "대표성"을 상실하고 "정당성"이 사라질 때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체제룰 구축함과 동시에 정치 영역 뿐 아니라 사회 저변의 각 분야에 있어서 폭 넒은"풀 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민주주의"체제의 구축을 꾀 했다. 이를테면 대학에서의 민주주의, 직장 내에서의 자주제등을 꼽을 수 있다. 
"풀 뿌리 민주주의"의 구축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다. 역 사례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권위주의, 독재 정권"은 역사적으로 단순히 물리력만을 사용하여 피지배층을 탄압하거나 정권에 순응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시민사회의 사적영역에 침투하여 "권위주의"체제를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침투시키고자 항상 부단히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서구 근대사회의 출현과 함께 발전했던 자본주의 질서가 시민들의 사적 영역에 침투하여 "공사 분리 이데올로기"를 통한 "작업장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 낸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질서의 침투속에 시민들의 사적영역은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는 재편이 이뤄졌다. "풀 뿌리 민주주의"가 존재하듯이 "풀 뿌리 권위주의"를 통한 정치적 정당성의 확보가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민주주의 만큼이나 사회적 민주주의의 실현 또한 중대한 사안일 수 밖에 없다.

지배집단, 정권의 성격은 항상 가변적이다. 정치적 도덕성이 충분한 사람이 정권의 수장에 앉을 수도 있고, 그렇게 보였던 사람이 정당성을 잃는 경우 또한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들을 정치적 대표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며, 그들이 충분하게 시민, 유권자의 대표역할을 하지 못할때 "의사"를 충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제하는 시스템의 구축이다. 또한 정치인들만을 통한 정치가 아닌, 시민들 개개인이 직접 정책입안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해볼 수 있는 기회또한 마련되어야 한다. 때문에 정치인에 대한 맹신은 꽤나 우려스러운 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공산주의가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큰 원인중 하나는 공산주의 지배구조 자체가 "독재자를 키워내는 온실"일 수 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존재하지 않는 자동차는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없고 헤드라이트가 부숴진 자동차는 앞길을 볼 수 없다. 

사람들은 봄이 오면 지나간 겨울의 추위를 털어내고 따뜻함을 만끽한다. 하지만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면 언제든 다시 겨울이 온다는 점이다. 봄이 돌아오듯이 언제든지 겨울도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따뜻함을 만끽할 뿐만 아니라 늘 다시 올 겨울을 나기 위한 월동 준비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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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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