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new
BGM 출처 : https://youtu.be/f9s71tsXJYA
복효근, 풀밭 뉴스
산길 걷다 보니
낡은 TV 하나 반쯤 누운 채
버려져 있다
강아지풀 명아주
쑥부쟁이 모여서들
갸웃갸웃 브라운관에 저를 비춰본다
전원이 없어도
안테나가 없어도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날씨는 쾌청
풀들의 무도회엔 인기척만이 두렵다
지금은 일요일 정오
뉴스가 있을 시간
누가 켤세라 누가 끌세라
개구리 한 마리
전원 버튼 위에 앉아 버티고 있다
송경동, 철학
술 마시고 깊은 얘기하는 게 도통 정서에 맞지 않아
옆 자리 누워 듣는데 철학 논쟁이 붙었다
독일 철학에서 프랑스 철학으로 갔다가 동양 철학을 넘나든다
서로 물러서지 않고,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와 니체와 하버마스와
푸코와 들뢰즈와 요즈음 뜨는 아감벤과 랑시에르가
노자와 장자로 건너뛴다, 누가 더 많이 섭렵했냐는, 현란한
논쟁이 그렇듯 누구를 이야기하나
모두 평행선이다
정작 맑스는
너무 쉬워 얘기하지 않는가 보다
나도 조금은 안다
‘철’이 조금은 무겁다는 것을
‘철’은 잘 물러서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철’은 잘 구부러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철’은 잘 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정련된 ‘철’로 맞는 게 손으로 맞는 것보다 아프다는 것을
오랜 철공장 생활로 조금은 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평범한 생철학을
상부구조가 꼭 토대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영도, 진달래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쓰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恨)이 터지듯
여울 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辱)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山河)
괴테, 첫사랑
아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날
첫사랑의 그 때를
아아 누가 돌려 줄 것이랴
그 아름다운 시절의
다만 한 토막이라도
쓸쓸한 이 상처를 키우며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슬픔에
잃어진 행복을 슬퍼하고 있으니
아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나날
첫사랑의 그 즐거운 때를
이경임, 음악
세상에서 아름다운 음악은
망가진 것들에게서 나오네
몸 속에 구멍 뚫린 피리나
철사줄로 꽁꽁 묶인 첼로나, 하프나
속에 바람만 잔뜩 든 북이나
비비 꼬인 호른이나
잎새도, 뿌리도 잘린 채
분칠, 먹칠한 토막뼈투성이 피아노
실은 모두 망가진 것들이네
하면, 나는 아직도
너무 견고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