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852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5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16 18:17:0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JtC3QStKNKs




1.jpg

도종환화인(火印)

 

 

 

비 올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가자

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두둑 떨어지고

검은등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쪽 바다에서 있던 일을 지켜본 바닷바람이

세상의 모든 숲과 나무와 강물에게 알려준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을 아픔이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2.jpg

권순자열여덟의 웃음

 

 

 

낮이 가방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바다는 네 방에 가득 몰려와 밤마다 파도친다

바다의 목소리들

 

내일을 미리 열고 들어간

너의 밤이 물결에 철썩인다

네 부푼 꿈이 오므라지고

늘어놓은 책들이 스르르 일어서서

네 방문을 연다

비상구가 떠올라 허공으로 올라간다

 

기웃거리는 밤

깜빡이며 바다를 뒤적이는 밤

 

어제의 노을이 돌돌 말려서

가슴속으로 밀려온다

파도처럼

모래는 바람에 실려

창자 속으로 뒤틀리며 몰려온다

길 잃어버린 바람이 문 앞에서

울음처럼 펄럭거린다

 

분해된 꿈들이 조개들 따라 입을 다물었다

물살을 헤치고 이름들이 솟구친다

슬픔이 너무 오래 말라갔어

몸을 짜내는 기다림이 너무 길어졌어

널뛰는 그리움이 해일처럼 밀려왔어

 

아름다운 목덜미에 열여덟의 시간이 새겨지고

얼음처럼 차가운 실망

끙끙 앓는 혀

 

어미의 수심은 빈방에서 펼럭거렸다

철썩거렸다

비가 오면 귀가 열린다

너를 듣는 밤이 길다

밤이 젖어

뱀처럼 느리게 기어간다

 

컴컴한 한숨

기도하는 입술이 떨린다

 

너는

움켜쥔 소라로 소리를 들으며

고둥으로 나팔을 불고

영원을 호출하며

세상 밖으로 가는 길로 헤엄을 치고 갔다

 

달이 뜨고

삶을 습격한 폭력과 혼돈의 문턱을 넘어서

갔다

 

벚꽃망울 터뜨리던 열여덟의 웃음이

그립다








3.jpg

박찬세부를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

 

 

 

선원을 선원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선장을 선장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사장을 사장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해경을 해경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장관을 장관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총리를 총리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대통령을 대통령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배를 배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바다를 바다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파도를 파도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너희들을

꽃 같은 너희들의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되었다







4.jpg

나희덕난파된 교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복을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움직여라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주었더라면

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주었더라면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 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 만 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복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5.jpg

김선우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믿기지 않았다사고 소식이 들려온 그 아침만 해도

구조될 줄 알았다어디 먼 망망한 대야도 아니고

여기는 코앞의 우리 바다

어리고 푸른 봄들이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시키는 대로 하라지시를 기다리라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 있다

욕되고 부끄럽다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무능과 오만이 참혹하다

미안하다반성없이 미쳐가는 얼음 나라

너희가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가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

 

환멸과 분노 사이에서 울음이 터지다가

길 잃은 울음을 그러모아 다시 생각한다

기억하겠다너희가 못 피운 꽃을

잊지 않겠다이 욕됨과 슬픔을

환멸에 기울어 무능한 땅을 냉담하기엔

이 땅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죄가 너무 크다

너희에게 갚아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마지막까지 너희는 이 땅의 어른들을 향해

사랑한다사랑한다고 말한다

차갑게 식은 봄을 안고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운다

잠들지 마라부디 친구들과 손잡고 있어라

돌아올 때까지 너희의 이름을 부르겠다

살아 있으라제발 살아 있으라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