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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삶의 기쁨을 넉넉히 맛보려면 적당한 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생겨나는 의문,
그래서 그 적당함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지?
아무리 피가 섞인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 간에 완벽히 똑같은 ‘적당함’이란 절대 불가능하다.
즉, 적당함에 대한 기준은 각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우리는 때때로 혹은 자주 잊고 살아간다. 도대체 적당함이란 뭘까?
적당히 만족하며 살아가기
적당히 무언가를 갈망하기
적당히 누군가를 사랑하기
적당함이란 기준은 어디서 나오고 누가 정하는 것이며,
같은 단어의 이면에 각자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우리가 평소에 쉽사리 사용해도 되는 단어일까?
얼마 전, 친한 친구와 적당함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 문득 그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근데 적당함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잖아.. 결국 적당함이란 말은 없는 말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공감했다.
일상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언어지만
모든 인간마다 각자 다를 수밖에 없는 단어, 적당함.
보편적인 기준의 '적당함'이라는 단어를 정할 수 없다는 것은 애초에
누군가가 만들어낸 하나의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친구의 말마따나 없는 말이나 마찬가지 일지도 모르는 단어, 적당함.
가령 누군가에게 업무 지시를 할 때 “적당히 알아서 해”라고 말한 상황 치고,
완벽하게 만족하는 상황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의 적당함의 척도가 서로 다르기에 생겨나는 당연한 결과다.
사실 큰 문제는 이 적당함이란 단어가 때로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적당히 알아서 하라고 업무 지시를 던져놓고
나중에 가서 본인의 기대치에 다다르지 못했다며
상대에게 면박을 주고 타인을 그저 갈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스스로 목표를 세울 때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적당히 ~하기’라며 목표를 설정하면, 어느 순간 지칠 때 잠시 쉬어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린다.
지쳤을 때 이 정도면 '적당히 했다'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잠시 쉬어갈 수 있으니.
개인에게 적어도 그런 명분을 부여해주니.
이젠 됐다며 적당함이라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것에 영원히 머무는 순간,
개인의 발전과 꿈꾸던 목표 의식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적당함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물론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땐 가끔 필요할 수 있지만
원하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갈 땐 가장 불필요한 단어, 적당함.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적당하게 보다는 더 자세하게 개인의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누군가가 “적당히 알아서 해”라고 업무 지시를 한다면,
상대에게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달라고 당당히 외칠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십중팔구 본인의 적당함에 다다르지 못했다며 면박을 줄 테니.
생각하면 할수록,
어쩌면 적당함이란 말은 애초에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던
친구의 말이 너무나 깊이 와 닿는다.
출처 | http://brunch.co.kr/@youthhd/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