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득, 특근
하루 품삯 곱빼기인
국경일도 일요일도
집안의 상처들을
꿰매고자
출근한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상처가 또
곪아 있다
여태천, 단단한 문장
뻐가 점점 야위어간다
생각이 단단해질 때까지
우유를 마시고 또 마신다
뼈가 튼튼해야 하는데, 라고 쓰는데
이미 생각은 수정할 수 없이 단단해져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언어에 대해
뼈에 대해
뼈의 문장에 대해
두 팔과 머리는 이미 충분히 단단하다
단단한 언어가 만드는
저 생각의 근육들을 좀 봐
점점 건강해지고 있는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저 생각이 나를 만들었다
김사인, 오누이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여섯 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 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을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싹 당겨 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 하는 얼굴로 오래비 올려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테만 화풀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들 보니
눈물 핑 돈다
박남희, 노숙자
그리움도 저렇듯 웅크리고 있으면
어두워질까
온몸으로 신문지의 글자를 읽고 있으면
잠이 올까
그리하여
수많은 발자국 소리 속에
먼 발자국 소리 하나 아주 지워질까
누군가가 몹시 그리울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마종기, 길목에 서 있는 바람
한 세월 멀리 겉돌다 돌아와 보니
너는 떠날 때 손 흔들던 그 바람이었구나
새벽 두 시도 대낮같이 밝은
쓸쓸한 북해와 노르웨이가 만나는 곳
오가는 사람도 없어 잠들어가는
작고 늙은 땅에 손금처럼 남아
기울어진 나그네 되어 서 있는 길목들
떠나버린 줄만 알았던 네가 일어나
가벼운 몸으로 손을 잡을 줄이야
바람은 흐느끼는 부활인가, 추억인가
떠돌며 힘들게 살아온 탓인지
아침이 되어서야 이슬에 젖는 바람의 잎
무모한 생애의 고장난 신호등이
나이도 잊은 채 목 쉰 노래를 부른다
두고 온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바람이 늘 흐느낀다는 마을
이 길목에 와서야 겨우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