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기자(記者)는 만들어진다
스카이데일리 칼럼
기자 초년병 시절, 오전 출입처 취재를 시작으로 협회와 단체를 온 종일 다녀도 기삿거리 하나 건지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데스크에게 뭐라고 보고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한강둔치에 앉아 ‘멍’을 때리던 일도 많았다. 20여년 전 일이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한 이유는 ‘기사(記事)를 써야한다’는 절박감과 마감시간에 대한 압박감이 컸기 때문이다.
특종은 아니어도 무난한 기사를 쓸 수 있기까지 꼬박 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기간 감내해야 했던 데스크의 지적질과 선배들의 습관적 무시, 그리고 ‘나만의 속앓이’는 오히려 이정도 나마 기사를 쓸 수 있게 해 준 자양분이 됐다.
운동선수는 성적으로 말하고,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듯,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고 한다. 따라서 기사는 기계로 찍어내 듯 양산되는 것이 아니라 ‘촌철살인의 단어와 구절로 이뤄진 팩트’라는 것이 나의 개똥 철학이다.
기자에게도 윤리강령이 있다.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 할 것,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할 것, 기사를 통해 사회갈등을 조장하지 말 것... 기타 등등...
하지만 정해진 마감시간 내에 ‘촌철살인의 멘트’를, 윤리강령 다 지켜가며 매일같이 써 낸다는 것은 무리일 수 밖에 없다. 언론매체에서 종종 오보가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잘못된 보도에 대해 솔직히 시인하고, 신속하게 바로 잡는 일이다. 기자는 오직 기사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기자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련의 시련을 거쳐 단련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 뿐 아니라 운동선수, 사업가, 학자 등 대다수 직종도 다르지 않다. 훈련된 운동선수는 성적으로, 단련된 사업가는 재무제표를 통해 말한다. 학문에 천착(穿鑿)한 학자는 연구 성과물로 자신을 입증한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는 솔직히 시인하고 바로 잡아 나간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부정부패와 국정농단을 일삼은 두 전직 대통령, 불법취업을 알선한 정치인들, 뇌물로 사업을 확장해 온 기업인들, 알량한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일삼아 온 인기 연예인과 사회 지도층의 민낯을 보고 있다. 숨겨져 왔을 뿐 드러나지 않았던 뿌리 깊은 병폐가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이 자행한 병폐를 솔직히 인정하고, 우리 사회는 일그러진 질서를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법과 상식이 우리 사회에서 곧추 설 때까지 데드라인은 없다.
영국의 미래학자인 데니스 가보르는 그의 저서 ‘성숙사회(mature society)’에서 풍요로운 물질적 토대 위에서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평화와 정신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성숙사회’라고 보았다.
성숙한 사회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우리는 지금 성숙사회로 들어가는 좁은문을 두드리고 있다.
[김진강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