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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간 문제
게시물ID : lovestory_851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닥터블랑
추천 : 2
조회수 : 32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07 18: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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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친구와 홍대에서 공연하는 어느 젊은 연주자의 무대를 함께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가 먼저 운을 뗐다.

"놀랍던데."

연주의 감흥에 젖어 있던 나는 그의 반응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들떴던 내 마음을 다시 가라앉히고 말았다.

"그런 실력으로 공연을 하다니 용기가 대단해."

나는 그가 꽤 오랫동안 기타를 연주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름대로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그의 의견에 곧장 공감을 표현하기도 애매했고, 연주를 직접 하는 사람의 관점은 단순한 관객인 내 느낌과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에 나는 할 말을 고르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말을 이은 것도 그였다.

"사실 원래 저렇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나는 그가 그들을 비판하려는 줄 알고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시니컬 말은 그의 성격을 감안했을 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에 불과한 듯했다.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그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어린 나이에 뭘 할 때 못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오히려 잘 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런데 나는 어렸을 때 그걸 몰랐단 말이야. 난 겁쟁이거든. 잘 하든 못 하든 그냥 하면 되는 건데 연주의 완성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느라 그러질 못했어."

그 사이 아주 잠깐동안이지만 내 발걸음이 그의 빌걸음보다 아주 조금 느려졌었다는 사실을 그는 느꼈을까. 우리는 곧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우리의 발은 동일한 지점에 멈춰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어깨를 부르르 떨며 내가 말했다.

"으, 춥다."

아직 완연한 봄은 아닌 터라 밤이 되면 금세 쌀쌀해졌다. 자켓 하나만 입은 나를 보곤 친구가 말했다.

"이거 미안한데?"

그는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내가 씨익 웃자 그 또한 따라 웃으며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미안한 짓을 해야겠어."

그는 미소를 띄우며 점퍼의 지퍼를 올렸다.

"몸이 둘이면 하나는 따뜻해야 하니까."

나는 싱겁게 웃었다. 그와 나는 역까지 걸어가서 순대국집에 갔다. 40년 전통의 그 집은 따로국밥을 시키면 머릿고기를 뚝배기의 절반을 넘게 채워주는 곳이었다. 학부 때 선배를 따라 갔다가 4년만에 다시 간 그곳의 맛은 4년 전에 먹었던 기억 속 맛과 똑같았다. 우리는 각자의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나와 지하철을 탔다. 한참을 갔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한 정거장 먼저 내렸다. 닫히는 문 사이로 보이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왔기에 조금 지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날 나는 결국 그 말을 밖으로 내지 않았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는 말 같았으니까. 그러나 아마 훗날에도 이 말을 그에게 건네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조금 쉬면서 다시 기운을 차리기만 한다면 누가 뭐라고 안 하더라도 제 길을 향해 묵묵하게 걸어갈 녀석임을 나는 믿기에.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단순히 시간의 문제임을 확신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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