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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어깨 너머의 삶
게시물ID : lovestory_850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1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03 16:59:4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4fM_LC8DCys




1.jpg

신미균

 

 

 

지하도

복권 판매소 옆

맨 바닥에 붙어 있는

단물 빠진

그를

떼어내자

길게 길게 이어지는

신음 소리

 

 

그는 아직 살아 있다







2.jpg

이선자돌에 물을 준다

 

 

 

돌에 물을 준다

멈춘 것도 같고 늙어 가는 것도 같은

이 조용한 목마름에 물을 준다

이끼 품은 흙 한 덩이 옆으로 옮겨 온

너를 볼 때마다

너를 발견했던 물새우 투명한 그 강가의

밤이슬을 생각하며 내가 먼저 목말라

너에게 물을 준다

 

나를 건드리고 지나는 것들을 향해 손을 내밀 수도 없었고

뒤돌아 볼수도 없었다 나는 무거웠고 바람은 또 쉽게 지나갔다

움직일 수 없는 내게 바람은 어둠과 빛을 끌어다 주었다

때로 등을 태워 검어지기도 했고 목이 말라 창백해지기도 했다

아무하고도 말을 할수 없을때긴꼬챙이 같이 가슴을 뚫고 오는

빗줄기로 먹고살았다 아픔도

더더구나 외로움 같은 건 나를 지나는

사람들 이야기로만 쓰여졌다 나는 몸을 문질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숨소리도 없이 몸을 문질렀다

내 몸에 무늬가 생겼다

으깨진 시간의 무늬 사이로 숨이 나왔다

 

강가 밤이슬 사라지고

소리 없이 웅크린 기억들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너의 긴 길이 내 몸 속으로 들어 왔다

멈출 수도늙어갈 줄도 모르는

돌 속의 길이

나에게 물을 준다







3.jpg

박정원물비늘을 읽다

 

 

 

누군가 왔다간다

바람이다

슬쩍 건드려보기도 하고 세게 치고 달아나기도 한다

숨이 잦아들자 강물은

하늘 자리엔 하늘을 구름 자리엔 구름을 산 자리엔 산을

어김없이 품는다

다시 바람이 꽃잎으로 조로록 내려앉자

거꾸로 앉힌 그들 자리에서는

안팎으로 드나들던 독수리 날갯짓이새끼염소 울음이

푸른 멍을 입히던 물푸레나무 이파리가

갈기갈기 찢어진 깃발로 팔랑인다

신발 두 짝만 보듬은 사내의 젖은 눈이 아롱자롱

강물 위를 걷는데

수면을 박차고 치솟는 물고기 한 마리

덥석 그 눈빛을 물고 따라간다

갔던 바람도 돌아와 촤르르 빗질을 한다

강을 건넌 사내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빗살문자를 해독한다

하늘이구름이산이

흐트러짐 없이 그 광경을 베끼고 있다

수심(愁心)이 깊은 자리마다 빛을 낸다

저리 빛나는 줄도 모르고 강물은 가끔 빗살로 흐느낀다

굴절의 그늘이 더욱 눈부시다







4.jpg

장이지어깨 너머의 삶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소매 끝이 닳은 양복이 한 벌 있을 따름이다

그 양복을 입고 딸아이의 혼인식을 치른 사람이다

그는 평생 개미처럼 일했으며

비좁은 임대 아파트로 남은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굽은 등

투박한 손을 들키는 사람이다

그는 그 거대한 손으로만 말을 할 줄 알았다

언젠가 그가 소중하게 내민 손 안에는

산새 둥지에서 막 꺼내온 헐벗은 새끼 새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새근대고 있었다

푸른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어두움의 음습한 숲에서

홀로 빛나던 새는 지금 어느 하늘을 꿰뚫고 있을까

그의 손에 이끌리어 가 보았던 하늘

구름 바람 태양 투명한 새

그는 그런 것밖에 보여줄 줄 모르던 사람이다

그의 내민 손 안의 시간

그의 손에서 우리는 더 무엇을 읽으려는가

그는 손으로 말했지만

우리는 진짜 그를 한 번도 보지는 못했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내민 손에 있지 않았다

어깨 너머에 있었다

닳아빠진 양복을 입고 선술집에 앉아

그는 술잔을 앞에 둔 채 어깨 너머에서 묵묵했다

그 초라한 어깨 너머를 보고 싶은데

차마 볼 수 없는엄두가 나지 않는

그는 어깨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다







5.jpg

정한모나비의 여행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의 강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날으다가

깜깜한 절벽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 부딪히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 냄새 소용돌이

진쟁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히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 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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