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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안부가 그리운 날
게시물ID : lovestory_850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6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3/29 17:13:1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RJnUmkbn6bs





1.jpg

송경동가두의 시

 

 

 

길거리 구둣방 손님 없는 틈에

무뎌진 손톱을 가죽 자르는 쪽가위로 자르고 있는

사내의 뭉퉁한 손을 훔쳐본다

그의 손톱 밑에 검은 시()가 있다

 

종로 5가 봉제골목 헤매다

방 한칸이 부업방이고 집이고 놀이터인

미싱사 가족의 저녁식사를 넘겨본다

다락에서 내려온 아이가 베어먹는 노란 단무지 조각에

짜디짠 눈물의 시가 있다

 

해질녘 영등포역 앞

무슨 판촉행사 줄인가 싶어 기웃거린 텐트 안

시루 속 콩나물처럼 선 채로

국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는 노숙인들 긴 행렬 속에

끝내 내가 서 보지 못한 직립의 시가 있다

 

고등어 있어요 싼 고등어 있어요

저물녘 "떨이 떨이"를 외치는

재래시장 골목 간절한 외침 속에

내가 아직 질러보지 못한 절규의 시가 있다

그 길바닥의 시들이 사랑이다







2.jpg

양현근안부가 그리운 날

 

 

 

사는 일이 쓸쓸할수록

두어 줄의 안부가 그립습니다

마음안에 추절추절 비 내리던 날

실개천의 황토빛 사연들

그 여름의 무심한 강역에 지즐대며

마음을 허물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완전하게 벗는 일이라는 걸

 

나를 허물어 너를 기다릴 수 있다면

기꺼이 죽으리라고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내릴 거라고

 

사는 일보다

꿈꾸는 일이 더욱 두려웠던 날들

목발을 짚고 서 있던

설익은 시간조차도 사랑할 줄 모르면서

무엇인가 담아낼 수 있으리라

무작정 믿었던 시절들

그 또한 사는 일이라고

 

눈길이 어두워질수록

지나온 것들이 그립습니다

터진 구름 사이로

며칠 째

먹가슴을 통째로 쓸어내리던 비가

여름 샛강의 허리춤을 넓히며

몇 마디 부질없는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잘 있느냐고







3.jpg

이병률나비의 겨울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화초에 물이 흥건하고 밥 지은 냄새 생생하다

사흘 동안 동해 태백 갔다가

제천 들러 이틀 더 있다 왔는데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누군가 내 집에 있다 갔다

나는 허락한 적 없는데 누군가는 내 집에 들어와

허기를 채우고 화초를 안쓰러워하다 갔다

 

누군가는 내 집에 살다 갔는데

나는 집이 싫어 오래 한데로 떠돌았다

여기서 죽을까 살을까 여러번 기웃거렸다

 

누군가 다녀간 온기로 보아

어쩌면 둘이거나 셋이었을지도 모를 정겨운 흔적 역력하고

문이 잠긴 걸 보면

한번 왔다가 한번 갈 줄도 아는 이 분명하다

 

누군가 내 집에 불을 놓았다

누군가 내 집에 불을 끄고 아닌 척 그 자리에 다시 얼음을 놓았다

누군가 빈집에서 머리를 풀어 초를 켜고 문고리에 얼굴을 기댔다







4.jpg

김완하남의 신발이 나를 신고

 

 

 

어제저녁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신발을 바꾸어 신고 돌아왔다

누가 먼저 내 신을 신고 갔는지

내가 그의 신을 신고 왔는지

 

오던 길 멈춰 내려다보니

남의 신발이 나를 신고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잠시 서서 내 발에 힘을 주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이

이렇게 나의 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니

 

다음 날 아침은 엘리베이터 타지 않고

11층에서 계단을그것도 두 칸씩 뛰어내려

어제와 다른 쪽 길을 향해 걸었다

 

누군가의 발을 옥죄었을지도 모를 신

내게 와서 비로소 편안해진 그의 신발

누군가에게 가서 그의 발을 품고 있을

나의 신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5.jpg

고영민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

 

 

 

산비알 흙이

노랗게 말라있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푸석푸석 들떠있다

 

저 밭의 마른 겉흙이

올봄 갈아엎어져 속흙이 되는 동안

낯을 주고 익힌 환한 기억을

땅속에서 조금씩

잊는 동안

 

축축한 너를

캄캄한 너를

나는 사랑이라고 불러야하나

슬픔이라고 불러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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