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하나 눌러쓰고 동네 마트에 갔더니
누가 내 사랑 투게더를 다 사가고 음슴으로 음슴체.
본인은 요런 크리처 하나랑 동거하고 있음.
요즈음 날도 더운데 저 털을 해가지고
꼭 무릎 위에서 논다고 비비대고
내 배에 딱 붙어서 잔다고 징징대는 배려심 없는 개녀석임.
그래도 나름 주인 말이 하늘이다 해주고
애교도 잘 떨고 짖지도 않고 밥도 주는 대로 잘 먹는 착한 애임.
(오구오구 내새끼ㅜㅜ)
문제가 하나 있다면.. 물론 단 하나는 아니지만 어쨌든,
산책 잘 하다가 뻗대는 버릇이 있음.
집에 가기 싫다는 건지 걷기가 싫다는 건지
아까 너 내가 아끼는 발바닥 털을 다 밀었겠다, 어디 당해봐라 하는 건지
이러고 있으면 정말 대책 없음.
버리고 저만치 가도 안 따라옴.
산책로에서 개랑 싸우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 다 구경함.
무척 창피함.
뭐 콩알만한 거 번쩍 안고 오면 돼지, 하겠지만
저게 또 돼지 맞음.
털 때문에 속는 거지 안으려고 하다가 어익후, 하는 사람들 많음.
간식이라고는 오이 상추 양배추 연근 우엉.. 같은
야채 종류만 가끔 줄 뿐인데 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음.
타고난 거임! 뼈대가 굵은 거임! 물만 마셔도 살찌는 거임!
헉헉헉.
그나마 집 다 와서 저러면 번쩍 들어서 씩씩하게 걷는데
자 집에 가자 하고 돌아서서 바로 주저앉으면 진짜 답 없음.
비만 개 운동시키려다가 내가 운동이 다 됨. 효자견임..
동물 기르는 사람의 필수품인 이동장이랑 가방이
물론 나에게도 있지만
다들 부피나 무게가 상당해서
집앞에 산책 나갈때 들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음.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슬링백이란 물건을 보게 됨.
요거 괜찮네 했는데
알뜰한 나에게는 가격대 형성이 좀 그렇고 그럼.
그냥 가방이잖아! 하면서 자체 제작에 들어감.
나는 헌 옷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함.
앞 뒤 안가리고 사재낀 원단을 깔고 덮고 두르고 자도 될 만큼 쌓아뒀으면서
굳이 헌 옷을 뒤져서 잘라 만들겠다는 것도 문제이긴 함.
2000년 대 초반에 입던 셔츠임.
보이프렌드 룩 같은게 아니라 그냥 남자옷임. 그것도 큰 남자옷.
색도 바래고 노리끼리 해졌는데 저 옷단이 맘에 드니까 활용함.
가볍고 막 쓰기 좋은 무난함이 모토임.
일단 개 크기를 재 봄.
모양을 생각하고 패턴을 만들고 성심성의껏 자르고 있는데
그딴거 난 필요없으니 공이나 던지라고 하심.
오른쪽 왼쪽은 양 옆, 등판은 아랫부분, 팔부분은 어깨끈을 만들거임.
나 자 많음. 자 좋아함. 자랑하려고 같이 찍음.
개 말을 귓등으로 듣냐!
그냥 나랑 놀기나 하라고!
하면서 애써 다림질 해 놓은 걸 고질라처럼 뭉개주심.
자, 출동이다!
먼지 앉을게 뻔해서 덮개 만들어 씌운 내 선견지명에 건배.
도록도록도록 박음.
참, 아무리 시침핀을 꽂아도
박음선 맞추기가 어려운 재봉취미자 여러분,
송곳으로 콕콕 찝어가면서 박으면 쉽습니다.
아이고 의미없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완성(응?)
모두 이중 박음질에 쌈솔임.
우리 뚱땡이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임.
폰이라도 넣겠다고 주머니도 만듬.
나중에 안 쓰는 가방에서 고리 떼어와서 끈 조절하게 할 거임.
지금은 지쳤으니까 일단은 저렇게 둠.
왠지 에코백같음..
무난해도 너무 무난함.
그래도 돌돌 말아서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니긴 좋을거 같다고
혼자 정신승리함.
아, 나 이런거 필요없댔는데 결국 만들었네.
그 시간에 다른 주인들처럼 닭가슴살이나 송목뼈 말려주지.
하고 꿍시렁대시는 개님.
넣어봄.
끄아아악!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그래도 나름 괜찮은가?
마무리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거임?
혼자 있고 싶어요. 모두 나가 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