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일 무렵, 우리 집 근처에는 백년 가까이 이어져 온 작은 목욕탕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가게라고는 해도 시대의 흐름 때문인지, 손님들이 그리 많이 찾아오는 곳은 아니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그 목욕탕을 무척 좋아해서, 매일 같이 그 목욕탕에 다니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셨던 것 같다.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지만,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목욕탕에 갔었으니.
어느 주말 밤, 나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옷을 벗고 힘차게 욕실 문을 열었는데, 깜짝 놀랐다.
언제나 파리나 날리고 있던 목욕탕이, 어찌 된 일인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욕탕 안에도 사람투성이고, 씻는 곳에도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내 뒤를 따라 온 아버지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래서는 못 들어가겠네. 좀 기다릴까?]
아버지는 맥주를,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고 탈의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목욕 전에 아이스크림을 먹다니, 평소와는 완전 차례가 반대라 나는 어쩐지 즐거웠다.
한동안 기다렸지만 나오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가 가서 지금은 어떤지 좀 보라고 해, 나는 다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또 놀랐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혼잡하던 목욕탕이었는데, 지금 보니 손님은 2, 3명 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던데다 나온 사람도 없었는데...
아버지도 깜짝 놀란 듯 했지만, 원래 사람이 사소한 건 신경쓰지 않는 분이라 아무 일 없었던 듯 평소처럼 목욕이나 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카운터 옆에 붙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럴수가,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가게를 닫는다는 것이었다.
고작 1주일 가량 남았는데.
문득 깨달았다.
아직 어린 나이였는데도, 왠지 아까 그렇게 손님이 많았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게가 문 닫는 게 아쉬워서, 먼 옛날부터 이 목욕탕을 찾았던 단골 손님들이 마지막으로 죄다 놀러왔던 거겠지.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지, [할아버지도 분명 계셨을텐데 말이야. 기껏 아들이랑 손자가 같이 왔는데 인사라도 해주지 참.] 이라며 중얼거리셨다.
나와 아버지는 그대로 아무 말 않고 손잡고 집에 돌아왔다.
목욕탕이 문 닫는 날, 다시 한 번 아버지와 목욕을 하러 갔지만, 그날은 평소처럼 한산할 뿐이었다.
목욕탕이 가득 찬 걸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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