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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님의 죽음과 가족에 대한 원망
게시물ID : gomin_11599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되돼제발좀여
추천 : 1
조회수 : 493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7/23 23:23:41
이야기가 조금 깁니다. 개인적인 일을 쓰려니 짧게 쓰기가 조금 힘드네요.
 
지난 주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정확히는 증조할머니시구요 99세 되셨습니다.
 
어린시절 저를 키워 주신 분이셨고 그만큼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제가 자랄 때 부모님의 정신적, 신체적 폭력으로 힘들어했거든요. 방학 때면 도피하듯 할머니댁에 가서 보름이고 한달이고 지냈습니다. 성장해서도 할머니를 뵐 때면 항상 옆에 앉아 한 시도 떠나지 않았던 저였습니다.
 
증조할머님은 증조할아버님과 함께 단둘이 생활하시다가 연세도 많이 드시고 독립적인 생활이 많이 불편해지셔서 외할머님(딸, 유일한 자식) 댁에 머무르게 됐습니다. 증조할아버님은 7년 전 갑작스런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신 지 1주일만에 돌아가셨구요, 증조할머님도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지난 주 요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요양원에 들어가신 지는 2달만입니다.
 
증조할머님은 집과 가족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특히 저를 비롯한 증손주들이나 손주들이 올 때면 마치 생일을 맞은 기분이라고 눈시울을 붉히시면서까지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나 청력이 안좋으셔서 귀가 거의 들리시지 않는 까닭에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저를 제외한 가족들은 자기들끼리 따로 앉아 대화를 하곤 했습니다. 할머님은 저 쪽에 앉아 즐겁게 얘기하고 있는 가족들을 외롭게 쳐다보시곤 하셨죠. 저는 할머님 옆에 앉아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쓰며 할머님과 얘기하곤 했습니다.
 
연세가 드셔서 점점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신경계통에 문제가 생기셨는지 예전보다 요의를 심하게 느끼셔서 화장실을 자주 가시곤 했는데
올해 초 화장실을 가시다가 몇 번 넘어지시면서 머리가 찢어지고 온 몸에 멍이 드셨습니다. 증조할머님를 모시는 외할머님(딸)도 연세가 드셔서 더이상 케어하시기가 힘드실 거 같아 일단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증조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료 받으시고 나으셔서 다시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병원에서도 요의를 비정상적으로 심하게 느끼셨는데, 일어나서 걸으실 몸상태가 아니어서 병원에서는 요의를 덜 느끼게 하는 주사를 놨습니다. 신경계통 쪽이어서 그런지 그 주사를 맞으시고는 기력이 거의 떨어지셔서 몽롱한 상태셨죠. 제가 병원을 방문해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얼마 후 증조할머니 병간호를 하시던 이모와 엄마(증조할머니 손녀)가 절 보고 당분간 병원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모는 매일 할머니를 뵙고, 엄마는 주말마다 방문해 할머니를 뵙고 병간호를 했어요. 
 
이모와 엄마가 제게 설명하기를, 증조할머니가 저를 보시면 집에 가시고 싶어하시고 흥분하셔서 안된다나요. 그동안 할머니는 밤낮으로 집에 가고 싶다, 우시며 가족들 이름을 부르시다 잠드시는 일을 반복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야속했던 건 할머님이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에 계실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모와 엄마는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더이상 머무시던 집으로 가실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정말 섭섭하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그리고 지난 주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측에 따르면 증조할머니가 한 달 전부터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음식 좋아하시는 할머님이.
 
입관식 때 증조할머님을 뵀습니다. 우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얼음같이 차가운 볼과 귀를 만지기만 하고 보내드렸습니다. 그 때 아직까지 귀가 열려 계시다고, 가족분들 하시고 싶은 말씀 하시라고 그러는데, 울먹거리느라 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평소같이 껴앉고 뽀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경황 없이 보내드리고, 먼저 가신 증조할아버님 옆에 모셔드렸습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니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아니, 그리움보다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죄책감과 그렇게 가족 그리워하시는 증조할머니를 가족들로부터 격리시킨 이모에 대한 원망, 증조할머니가 결국 요양원에서 돌아가실 거라고 너무 쉽게 포기하고 말을 했던 이모와 엄마에 대한 원망이 물밀듯 밀려옵니다.
 
사실 날이 얼마 안 남으신 건 알았지만 이렇게 외롭게 비참하게 돌아가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증조할머니의 죽음의 책임을 엄마와 이모에게 물으려는 건 아녜요. 하지만 가시기 전 조금이라도 가족분들과 함께하실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증조할머니가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실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셨더라면 식사도 거르지 않으셨을 것이고 이렇게 빨리 포기하고 돌아가시지는 않으셨을 거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할머니를 더 오래 보지 못해 아쉬운 건 게의치 않습니다. 하지만 증조할머니가 너무 외롭게 돌아가셨잖아요.
 
제가 지금 슬픔을 극복할 길을 찾지 못해 괜히 원망할 대상을 찾는 건가요?
 
이모와 엄마에게 너무너무 섭섭합니다. 증조할머니가 보고싶어 울다가, 엄마와 이모를 원망도 하다가 지쳐서 생활하기가 힘듭니다. 제가 잠깐만 죽어서 할머니를 뵙고 죄송하다고, 껴앉고 뽀뽀하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잠들 때마다 합니다.
 
가족을 잃으신 분들, 특히 부모나 형제를 잃으신 분들은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저를 철없다 한심하다 느끼실 수도 있을 겁니다. 아마 제가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죽는 데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는 데 말이죠.
 
이 긴 글을 읽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혹시 소중한 사람을 잃고 극복하셨던 방법이 있으시면 조언 좀 해 주시구요.
이모와 엄마에 대한 제 원망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시면 그것도 조언 좀 해 주세요.
 
비 오는 데 길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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