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후계자 시스템으로 살펴본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
'세자'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몇 명 있다. 태조 이성계의 아들로 태어나 이복형인 이방원에게 목숨을 빼앗긴 이방석. 태종 이방원의 아들로 태어나 14년간이나 세자 생활을 하다가 전격적으로 교체된 양녕대군.
선조의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냉대 속에 갖은 설움을 다 겪다가 임진왜란 때 세자가 되어 전쟁을 총지휘했으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또 다시 아버지의 외면을 받은 세자 시절의 광해군.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간 뒤 아버지인 인조의 의심과 견제를 받다가, 귀국하자마자 의문의 죽임을 당한 소현세자.
열 살 때부터 기득권층과 외척세력을 비판하다가 스물여덟 살 젊은 나이에 뒤주(곡식 상자)에 갇혀 사망한 사도세자. 세도가(권세가)의 힘에 밀려 왕권이 약해진 순조시대에,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며 기득권층을 긴장시키다가 스물두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효명세자 등.
이처럼 우리가 쉽게 기억하는 세자들은 대개 다 불운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세자들 중에서 잘 된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이나 사극에서 불행한 세자들의 사례만 다룬 탓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도, 세자들의 운명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가까웠다.
한국사 혹은 한국학 학자들인 심재우·임민혁·이순구·한형주·박용만·이왕무·신명호가 공동 집필한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란 책에 나오는 세자들의 운명은 그다지 밝지 않다. 세자란 위치는 왕위를 보장받는 전도유망한 자리라기보다는, 생명과 안전의 위협을 받는 불안한 자리에 더 가까웠다.
왕을 다루는 제왕학에 관한 서적은 쉽게 접할 수 있다. 각계각층에서 관리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 분야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다. 이렇게 오피니언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이런 책들이 출판시장에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미래의 왕'인 세자를 다루는 이른바 '세자학'은 아직은 낯설다.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는 그런 낯선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책이다. 교양서와 학술서의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세자 문제를 탄생, 책봉, 교육, 결혼, 대리청정(주상 직무대행), 문학 생활, 인간관계 등의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세자에 대한 개론서 혹은 개설서를 시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세자와 관련된 각종 의식이나 절차를 세밀하게 설명한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또 어느 시기에는 세자 책봉을 먼저 하고 관례(성인식)를 나중에 했고 또 어느 시기에는 그 순서가 서로 뒤바뀌었는지 하는 식으로, 의식과 절차의 변천 과정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세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이 보여준 특징 중 하나는, 역사와 문학의 접목을 통해 세자들의 내면세계까지 들여다보려 했다는 점이다. 이 책 제5부에서 사도세자와 효명세자의 한시를 읽다 보면, 좁은 구중궁궐에서 바깥세상을 품으려 했던 그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세자 문제의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들여다보려고 한 것은 꽤 긍정적인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세자들은 왜 그렇게 '불운'했을까
세자 문제에 관한 개론서에 가깝기는 하지만, 세자들이 대체로 불운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이 책을 읽는다면 독서의 재미가 훨씬 더 배가될 것이다. 이 점에 초점을 두고 읽어보니, 필자의 주관적인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자를 선정하고 교육하고 보호하는 조선의 후계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조선의 세자 시스템 혹은 후계자 시스템은 실패한 시스템이란 느낌이 든 것이다.
조선시대에 가장 정통성 있는 군주는, 왕비의 몸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세자에 책봉된 뒤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장남은 적장자로 불린다. 다시 정리하면, 적장자로 태어나 세자를 거쳐 왕이 되는 것이 군주의 정통성을 갖추는 코스였다.
27명의 조선 군주 중에서 이런 요건에 부합하는 왕은 문종·단종·연산군·인종·현종·숙종·순종 7명밖에 없었다. 정통성의 요건을 제대로 갖춘 군주가 전체의 25.9%밖에 안 됐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의 후계자 시스템이 정통성 있는 군주 후보자들을 제대로 끌어안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 289쪽에 제시된 표에 따르면, 사후에 왕으로 격상된 추존왕(예컨대 덕종·익종 등)의 세자를 제외하고 실제 주상의 세자로 살았던 사람은 총 29명이었다. 이 중에서 왕이 된 사람은 65.5%인 19명이지만, 그중에서 정통성 있는 군주로 거듭난 인물은 위의 7명뿐이었다.
이것은 29명 중의 세자 중에서 34.5%인 10명은 왕이 되지 못한 채 죽거나 쫓겨났고, 왕이 된 19명 중에서 63.2%인 12명은 정통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왕이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의 후계자 시스템이 그만큼 비효율적이었던 것이다. '세자' 하면 불행한 인물들만 떠오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자들이 대체로 불행했던 이유는 아버지나 형제들과의 관계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득권층과의 관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외척세력을 포함한 기득권층과 갈등을 빚은 세자들은 대개 다 끝이 좋지 않았다.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도 그랬고,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도 그랬다.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 259쪽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효명세자는 대리청정 기간에 외할아버지인 김조순의 계열을 숙청하고 친정체제 구축을 시도했다. 안동 김씨가 최고 권력을 잡고 있던 시절에 효명세자는 그 최고 권력에 도전했던 것이다.
이 책 190쪽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득권층이 보기에 '싹수가 노란' 효명세자는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피를 토하고 세상을 떠났다. 건강하고 젊은 세자가 이렇게 죽자 독살설이 제기됐지만, 진상은 파헤쳐지지 않았다. 기득권층이 진상 규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기득권층과의 관계가 안 좋은 세자들은 하나 같이 불행했다는 점은, 조선의 후계자 시스템이 기득권층으로부터 세자를 보호하는 데 취약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세자를 교육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으나, 정치 공세로부터 세자를 지키는 데는 무기력했던 것이다.
최고 권력은 자기 스스로 얻어내야 하는 것
사실, 후계자 시스템의 취약성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다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현직 대통령이 밀어주는 인물보다는 의외의 인물이 대통령이 된 사례가 훨씬 더 많았다. 이기붕·장세동·박철언·강삼재·김현철·박지원·이광재·김근태·정동영 등의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현직 대통령의 후원을 받으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은 인물들이 대통령이 된 예는 거의 없었다.
이것은 최고권력은 남한테서 얻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얻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직 주상의 보호를 전제로 하는 조선의 세자 관리 시스템이 결국 실패한 것은 이 같은 권력의 속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왕이 되는 것보다는 남(현직 주상)의 보호 하에 왕이 되는 게 어쩌면 훨씬 더 힘들 수도 있다. 왕이 될 사람은 세자가 안 돼도 왕이 되고, 왕이 안 될 사람은 세자가 돼도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를 덮었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 후계자 시스템의 또 다른 기능에도 주목하게 되었다. 후계자 시스템이 세자의 자격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적격자를 거르는 기능도 했다는 점이다. 이에 적합한 사례로 양녕대군을 들 수 있다. 학업을 소홀히 하고 툭하면 섹스 스캔들을 일으키다가 결국 신하들의 비판을 받고 물러난 양녕대군의 사례는, 세자 시스템이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순기능도 했음을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저자들이 앞으로 개정판을 낼 때 참고했으면 하는 사항을 세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조선의 세자 제도가 고려 후계자 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조선의 제도가 조선시대에 처음 생긴 듯이 기술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조선의 국가제도가 기본적으로 고려의 제도에서 기원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자 제도 역시 고려 제도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둘째, 연도상의 오류가 군데군데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 책 166쪽에서는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날이 1749년 1월 22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는 1749년 3월 10일이었다. 실록에는 이 날이 '영조 25년 1월 22일'로 표기되어 있다. 영조 25년 1월 22일은 음력이다. 이것을 양력으로 바꾸려면, 영조 25년만 양력으로 바꿀 게 아니라 1월 22일도 함께 바꿔야 한다.
셋째, 공동 저작이다 보니, 특정 문제에 대한 관점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사도세자가 정신이상자였다는 <한중록>의 기록이 거짓일 것이라는 전제 하에 내용을 기술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사도세자가 실제로 정신이상자였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내용을 기술했다.
이런 '옥에 티'만 제거한다면,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는 훨씬 더 유익한 세자학 서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계기로 한국 역사학이 제왕학 위주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책에 관한 서평이며 본 내용은 언론사의 입장과 다를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