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기, 물탱크의 울음
밤새 물탱크가 우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있다네
그르렁 그르렁
벼르는 어떤 사나운 짐승 소리를 내며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물탱크
몸 뒤척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네
탁한 물과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나도
하나의 노란 플라스틱 물탱크에 지나지 않았다고
나를 대신해
누군가
아프게 울어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네
문태준,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말이 있어
오늘은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말이 있어
길을 가다 우연히 갈대숲 사이 개개비의 둥지를 보았네
그대여, 나의 못다 한 말은
이 외곽의 둥지처럼 천둥과 바람과 눈보라를 홀로 맞고 있으리
둥지에는 두어 개 부드럽고 말갛고 따뜻한 새알이 있으리
나의 가슴을 열어젖히면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나의 말은
막 껍질을 깨치고 나올 듯
작디작은 심장으로 뛰고 있으리
백현국, 슬픔은 빨리고 있다
골목시장, 어린것이 소걸음이다
길을 재촉하는 어미의 성화를 귓전으로 흘리며
솜사탕의 단맛에 푹 빠져 있다
축축한 슬픔을 눈에 달고 빨아대는
저 치명적인 단맛에
무진장 휘둘리는 혓바닥을 보라
솜사탕이 빨리고, 손가락이 빨리고
마침내 골목시장까지 쭉-쭉 빨아대고 있다
젊은 어미는 짜증난 얼굴이다
손목을 낚아채고 종종 걸음이다
어미의 손목 끝에 걸려 유영하는 어린것
이제 입에 남은 것은
닳고 닳은 단맛의 추억뿐
순간, 어린것은 곧장
슬픔의 흔적을 단맛으로 변화 시킨다
혓바닥을 내밀어 쭉, 쭉
눈물, 콧물까지 빨고, 또 빨고 있다
슬픔도 빨다보면 단맛이 된다는 것을
대번에 깨닫는 저 어린것
이문재, 길
물은 그릇을 느끼지 않는다
봄길이던가
그리움도 외로운 것도 덧없이 노곤하기만 해
길에 나를 띄우고 갈 때에
남녁이었는가 꽃을 피워내는 뿌리들이 한껏 고단할 때
쉬엄 저녁이 오고 이슥하게 달빛도 뿌려졌었다
물에서 배워 물이 되려고 무진무진
길을 걸었던 모양이었다
포구에서 끊어진 길을 싣고 푸른 다도해던가
어느 섬으로 들었었다
바다라고 해도 물을 느끼는 것은 손톱만도 못한
파도 같은 물결들일 뿐
해진 옷에선 사람의 소금이 엉기고
나는 어느덧 스물이었다
훔쳐낸 아버지의 인감도장을 찍듯이
떨면서 어른이 되어버렸음을 깨닫고야 말았다
그날 이후론 눈앞이 아른거리는 어른이었다
박명용, 구경거리
울안에 갇힌 곰을 보러 갔더니
곰은 <너희들 보는 재미에 갇혔다>는 듯
줄줄이 밀려드는 인간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인간이 곰을 구경하는지
인간이 곰의 구경거리인지
하느님
이 세상 울은 어딥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