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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운명 같은 건 없다
게시물ID : lovestory_847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4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2/23 17:53:17

사진 출처 : http://boredeasily.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fMd6zG4VU8E





1.jpg

정현종아침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2.jpg

안도현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그 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로록 뜬눈 밝혀야 하리







3.jpg

최일걸과메기의 길

 

 

 

과메기 붉은 속살 한 점을 쌈 싸먹으면

바닷바람이 서걱거리며 시리게 눈을 찌른다

시큰한 눈물 한 방울이면

껍질이 벗겨진 채 속살만으로

대나무에 눈이 꿰인 꽁치에게 도달할 수 있을까

고광도 서치라이트 불빛에 현혹되어

유압호스에 빨려든 걸 생각하면

굳이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제 스스로 눈을 찌르고 싶은 심정일 게다

해풍에 얼었다 녹기를 거듭하면서

꽁치가 제 속에 열어놓은 벼랑길은 대체 얼마일까

수천 번 벼랑에서 뛰어내려 산산이 부서졌다

저린 살점을 그러모아

벼랑 끝에 다시 서기를 거듭하면서

꽁치는 애통하여 눈물보다 맑고 끈끈한 기름을

뚝뚝 떨어뜨린다

소주 한 잔에 곁들여 과메기를 씹으며

북해도에서 밥상에 이르기까지 과메기의 길을

더듬다보니 나 역시 사무친다







4.jpg

최승호북어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었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5.jpg


정희성

 

 

 

가까이 갈 수 없어

먼발치에 서서 보고 돌아왔다

내가 속으로 그리는 그 사람마냥

산이 어디 안 가고

그냥 거기 있어 마음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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