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딸
바퀴 달린 커다란 바윗덩어리, 지게차에
정면으로 받혔다고 한다. 아빠는
피가 쏟아져나오던 콧구멍으로
몇번인가 강제로 숨을 더 몰아쉬었다 한다. 까르르
세살 여자아이가 장의버스 안에서 웃고 있다
죽음이라는 말이
한 번도 건드려본 적 없는 그 웃음을 보고
겨우 참았던 울음이 여기저기서 나직하게 터지고 있다
최승자, 외롭지 않기 위하여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습니다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십니다
꿈꾸지 않기 위하여
수면제를 삼킵니다
마지막으로 내 두뇌의
스위치를 끕니다
그러면 온밤내 시계 소리만이
빈 방을 걸어다니죠
그러나 잘 들어보세요
무심한 부재를 슬퍼하며
내 신발들이 쓰러져 웁니다
김후자, 어머니의 바다
어머니의 옷에서는 늘 어물전 냄새가 났다
다리 서너 개를 숨기고 다니는 몸빼바지는 고무장화 속에 갇혀
시퍼런 바다 안을 헤집고 다녔다
거뭇거뭇 해질녘이면 살아서 펄떡이는 비린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어머니를 피해 다녔다
모로 누워있는 어머니는 생선을 닮았다
속은 다 내주고 텅 비어버린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의 곱고 보드라운 살만 골라내 맛있게도 먹었다
젓갈골목 어시장엔 퉁퉁 부은 빨간손의 어머니가 있다
울긋불긋 앞치마주머니 가득
불록한 희망을 구겨넣으며
일년이 가도 풀리지 않는 머리에 펑퍼짐한 몸
지나가는 사람 발길 잡아채는 입심 좋은 울진댁이 있다
둥근 나무도마 위에 듬성듬성 바다를 토막치며
한평생 간기에 젖어있는 섬
아직도 푸릇푸릇 살아나는 연탄 옆에 끼고
종이컵 가득 출렁이는 갈색바다
훌훌거리며 몸을 녹이는
제 몸이 바다가 되어 버린 어머니가 있다
이규리, 코스모스는 아무 것도 숨기지 않는다
몸이 가느다란 것은 어디에 마음을 숨기나
실핏줄 같은 이파리로
아무리 작게 웃어도 다 들키고 만다
오장육부가 꽃이랴
기척만 내도 전 체중이 흔들리는
저 가문의 내력은 허약하지만
잘 보라
흔들리면서 흔들리면서도
똑 같은 동작은 한 번도 되풀이 않는다
코스모스의 중심은 흔들림이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중심
중심이 없었으면 그 역시 몰랐을 흔들림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마른 체형이
저보다 더 무거운 걸 숨기고 있다
배정원, 두루마리 휴지가 풀려가듯
한 친구가 내게 말한다
너는 이제 잘 풀려가는 것 같다고
그래, 난 요즘 잘 풀리고 있다
두루마리 휴지가 잘 풀려가듯
그렇게 잘 풀려서
生의 내리막길을 쾌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잠시의 멈춤도 없이 구르다
구르다 돌아보면 한줄기 위태로운 하얀 선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얇은 목숨
바닥으로만 내달리는
가속이 주는 현기증 속에서
기억할 것도 없는 지나침 속에서
그래, 난 아주 잘 풀려가고 있다
마침내 살은 다 풀어 버리고
한 개의 마분지통으로 남아 관 속에
툭
떨어질 그날까지
길바닥에 나를 바르며, 나를 벼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