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그리움
신작로 건너 저 집이 네 집이런가
강물 건너 저 집이 네 집이런가
그리움에 사무쳐 사방 네 집이로다
밤하늘에 그려 놓은 저 달무리
서글프도록 고와서 보고 또 보나니
한없이 눈물만 흐르고 또 흐르네
석 달 보름 쉼 없이 먹어도 배고프고
시방 죽어도 채워지지 않을 모순
그래서 이토록 허한 가슴 안고 산다네
김재흔, 외로움은 눈이 없다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꼭 붙잡질 못한다
하루 내 땡볕에서
땀 흘리는 옥상의 안테나
낮닭이 울음소릴
막 길게 빼고 난 뒤
꼬리 깝죽대는 까치 한 쌍
서로 낄낄거리며
무어라 입질하는 적막강산
늘 붙어 다니면서도
외로움은 눈이 없어 발등을 밟는다
조미자, 빛
길 건너 연립주택 창문에 해가 뜨면
저물녘 내 방에 쏟아지는 빛
눅눅한 어두움 말갛게 씻어주며
빗살 엮은 죽비로 나를 치네
그저 스무평 연립 창틀인줄 알았는데
가슴에 뜨거운 태양 품고
저렇듯 되쏘아 주는구나
차마 바라보기 눈부셔
눈 감으면
가득한 노을빛 스르르 젖고 말아
내 창도 해를 품어 되쏘아 봤을까
황량한 들판 훑고 가는 바람 소리
불현듯 그 빛 그리워 내다보니
유리창에 해는 떠나고
한 조각 떨구고 간 빛
희미하게 걸렸네
박복화, 따뜻한 안부
그대 춥거던
내 마음을 입으시라
내복 같은 내 마음을 입으시라
우리의 추운 기억들은
따뜻한 입김으로 부디 용서하시라
당신과 나의 거리가
차라리 유리창 하나로 막혀
빤히 바라볼 수 있다면 좋으리
차가운 경계를 사이에 두고
언 손 마주 대고 있어도 좋으리
성에를 닦아내듯
쉽게 들여다보이는 안팍이면 좋으리
시린 발바닥에 다시 살얼음이
티눈으로 박히는 계절
한 뼘의 고드름을 키우는
바람소리 깊어지면
눈빛 하나로 따스했던 그대만
나는 기억하리
나조차 낯설어지는 시간
스스로 기다림의 박제가 되는 저녁
입술이 기억하지 못하는
절실한 그대의 안부
지금
내 마음처럼 그대 춥거던
이 그리움을 입으시라
조현수, 누군가를 가슴에 들이는 일은
누군가를 가슴에 들이는 일은
겨울 속에서도 꽃눈을 키우는 일이구나
찬바람 속에서도 섣불리 부를 수 없는 이름
가슴속 깊이 묻으면
조용히 물관부를 타고 오르는 푸르름
흔들림이 강할수록 눈망울은 중심을 붙들고
언저리마다 맺힌 그리움
가슴속에 들여진 것만으로도 아프고
기다림만으로도 눈감아 버려도 좋을
누군가를
누군가를 가슴에 들이는 일은
여문 씨앗하나 가슴에 품고
허물어지지 않는 자양분 뿌리에 담아
거스름 없는 하늘로 키워가는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