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후, 쓸쓸한 날에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고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들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알려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 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 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타전(打電)하는 것 같기에
고은영, 나는 너로하여 눈물겹다
내 몸의 모든 빛을 뽑아
너의 짚신을 짜랴
미완의 사랑으로 섧게 울어도
낮과 밤은 흐르고
세포마다 물이 든
네 정체를 나는 알지 못 한다
내 모든 생각의 촉수를 베어
너의 영혼에 심으랴
뜨겁디 뜨거운 내 가슴위로는
시원한 바람 한 점 불어주지 않고
분간못할 미움과 그리움의 장이
수 없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한다
아니면 최면을 걸고
내 모든 감수성을 걸고
눈물로 네 앞에 무릎을 꿇고 호소하랴
색채의 마술처럼 섭섭함으로 흐르는
애틋한 내 그리움에는 한계가 없다
불현듯 하늘 저 끝 자락 푸르름이
내 심연의 아픔을 퍼 올리면서
큐피트 화살로 네 심장을 과녁하여
당기고 싶은 강열한 충동 하나
간신히 잠 재운다
권선환, 지독한 기다림에게
내 늑장의 세월로
삼백 예순 다섯 날 두 손 모으고
발만 동동 구르던 그대는
어느덧 주름만 깊어가고
먼 거리에서 머뭇거리는
사유(思惟)의 등불은 아직 자신이 없다고
마냥 기다려 달라고 목청만 높이고 있다
그대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음도 알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 안에 숨 쉬는 혼돈의 계절은
아직도 어둡게 얼어붙어
그대를 비출 등심(燈心)에
불꽃도 되지 못하고 마냥 흔들리기만 한다
오늘도
기름기 없는 심지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내 무능한 밤은 불안으로 깊어가고
그대는 점점 어둠에 쌓여가고
김나영, 그리움이 익어 가는 거리
섬과 섬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섬과 섬 사이 오리 한 쌍이 지나갑니다
나룻배 한 척이 지나갑니다
섬과 섬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섬 이쪽과 섬 저쪽으로 갈매기가 바람의 사연을 물어다 나르고
섬쑥부쟁이가 피었다지고 피었다지곤 합니다
노을이 하루의 끝을 말아 쥐고 둥글게 번져 가는 시간입니다
섬과 섬 사이 최선의 거리가 발갛게 익어갑니다
박일, 저울 위에 서다
돌아본다
만만한 그 무엇도 없는 세상을 향해
한 줄기 향기라도 뿌려본 적 있던가
선다
저울 위에 선다
제법 올라간 눈금
까불지 마라 마라 마라
종은 비어있을수록 그 소리
멀리 퍼져나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