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 한 사람을 사랑했네
나의 전부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람
사랑의 추억을 머금고
그 사람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쓸쓸함이
깊어가는 아픔의 향수를 불러와
멀리 있어도 가깝게 느껴져
눈물로 흐르던 사람
그런 한 사람을 사랑했네
꽃 바람이 불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
허공에 휘날리는 꽃잎이 서러웠을까
눈물이 빗물로 부서진 날
나의 외로움마저 핥아주며
죽어갈 바다가 진정 서러움이었네
가끔씩 추억 속에서
회상의 언덕은 푸른 갈잎을 먹어대지만
에메랄드 불빛이 흐르는 창가에서
내 사랑은 기다림 속에
어둠의 절망을 마시고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바람의 얼굴로 쓰러져가네
박명옥, 민들레 홀씨
외로이 떠돌더니 끝내 날아가지 못하고
구실 돈의 무게가
바위만큼 무거웠나보다
늘어만 가는 마음의 부채를 갚기 위함인지
바래진 틈새 아래서
쓸쓸한 바람소리와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나뒹굴기에
너는
항상 가벼운 줄만 알았는데
무거워
날지 못하는 날 새처럼
남의 지붕 아래 처마 밑에서 노숙하다
젖어든 이름 하나
흩뿌려 놓을 줄이야
허영숙, 안부
가슴에 두고 간 작은 화분에
해가 뜰 때마다
물을 주고 말을 걸었을 뿐인데
오늘 아침에는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하얀 팻말에
사랑이라 이름 붙여두었는데
그대
이 소식 들었는지요
정끝별, 행복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벌거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홍수희, 해바라기의 시
사는 것이
지치고 힘겨울 때에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기를
한갓 안개 속의 풀잎처럼
숨고 싶어질 때에
어색한 변명도 위로도
내가 나를 설득할 수는 없고
불면의 밤만 깊어갈 때에
마음은 외딴 섬으로
망망대해를 부유할 때에
빗물은 차가운 뺨을 적시고
바람은 야위고 고단한 어깨를
이리저리 팽개칠 때에
당신의 얼굴만 바라보았어요
당신만 바라보았어요
아마 사랑이란 그런 것
내가 나에게 머물지 않는 것
마음은 진창을 밟고 있어도
시선은 태양을 향하는 그것
이보세요
눈물겨운 오늘도
당신 생각으로 저물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