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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긴 밤을 앓는다
게시물ID : lovestory_843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4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2/26 17:27:33

사진 출처 : https://demarianevarez.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DsgSHFiKNfc





1.jpg

양현주나무를 읽다

 

 

 

내가 나뭇잎이었다면

한 계절 나무를 떠날 수 있었을 텐데요

봄이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초록 눈물 뚝뚝 흘리며

당신 발등상에 무릎을 꿇더라도

지금 떠날 수 있었을 텐데요

 

나는

당신이에요

단단한 박달나무 주위를 빙빙 돌다가

짐승처럼 울고

숲에 갇혀 나무가 된 나는

당신 속안에

늘어나는 줄을 긋던 하얀 나이테

 

날마다 손끝으로

더듬거리며 당신을 읽어요

당신을 떠날 수 없었던 나는

해마다 동그랗게 당신 가슴 안쪽을 읽어요







2.jpg

최광임불멸의 사랑

 

 

 

화분 위에 숯덩이 하나씩 올려놓고

숯을 피해 화분에 물을 주곤 하였는데

깊은 밤톡 톡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마디 하나하나 추스려 뼈를 세우는 것일까

침대 옆 벤저민 화분 위

스멀스멀 기어오른 수분만으로도 금세

제 몸에 물길을 내고

생의 뿌리 움켜쥐고 한때 푸르렀던 나무

푸석한 몸뚱이 흔들어 깨워 뼈와 살을 채우며

장작 타는 소리 내고 있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뼈마디 곧추세워

아득히 되살아나는 불

여한 없이 태우고도 한 토막 숯으로 앉아

나머지 소신공양을 준비하는 것인가

죽어서도 죽지 않은 삶의 화분이 되는 날이면

긴 밤을 앓는다벤저민 잎들 무성하다







3.jpg

오규원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 잔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 잔 하고

한 잔 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 잔 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4.jpg

정호승눈발

 

 

 

별들은 죽고 눈발은 흩날린다

날은 흐리고 우리들 인생은 음산하다

북풍은 어둠속에서만 불어오고

새벽이 오기전에 낙엽은 떨어진다

언제나 죽음 앞에서도 사랑하기 위하여

검은 낮 하얀 밤마다 먼 길을 가는자여

다시 날은 흐르고

낙엽은 떨어지고

사람마다 가슴은 무덤이 되어

희망에는 혁명이

절망에는 눈물이 필요한 것인가

오늘도 이땅에 엎드려 거리낌이 없기를

다시 날은 흐리고 약속도 없이

별들은 죽고 눈발은 흩날린다







5.jpg


권선환이연(異緣)

 

 

 

강 건너 맞은편

한결같은 수평인데

쉬이 건너지 못하는 안타까움

갈꽃 흩날리는 둔치에서 나뒹구네

 

강물은 무던히도 흘러

언 계절도 가벼운 듯 밀어내며

바다와 간간한 밀어를 나누는데

밤마다 외로움 안고

강을 가로지르려 뛰어든 별은

내내 한 자리 파르르 떨기만 하네

 

닿을 듯 다가 설 수 없는

아득한 그리움

평행한 강폭 따라

시린 겨울서리로 굳어가고

 

마주한 침묵만

강 복판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지쳐 돌아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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