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터 어이가 없네요.
회사 어려운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영업이라는 것도 정도가 있지. 고민 끝에 몇 자 남겨야겠습니다.
명절에 식구들끼리 밥 먹다 실시간 욕터져 나올 뻔했는데 가까스로 참았습니다.
구독 권유할 때 정당 홈페이지이나 시민단체 커뮤니티서 번호 긁어 '위원장님~' 이러면서 전화하는 거 이해합니다. 아주 조금이나마 저를 또 우리를 '같은편'이라 생각하고 도와달라면 사실 마음이 많이 기울게 마련이니깐요.
한겨레 보다가 시사인 추가 구독하고 지인들도 함께 구독하고 동네 어린이 도서관에 1년치 배송하게 한 것은 물론이고, 몇 해 전 절독했지만 근래 시끄러울 때도 시사in이 얼마나 어렵게 출발한 언론인지를 설파하며 쉴드 아닌 쉴드까지 쳤습니다.
그렇게 아꼈었는데 이제는 정말 보내야겠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예의는 있어야지요.
물론 종교인이 아닌 분들은 지금부터 드리는 이야기가 별것 아닐 수 있고 저나 가족의 기분을 이해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만, 저로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우며 연휴가 끝나면 강력하게 항의할 생각입니다.
제 동생은 며칠 전 신부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10년 공부 끝에 본당에 첫 발령을 받았죠.
그런데 첫날 본당에 전화가 걸려왔답니다.
이ㅇㅇ이라며 동생을 바꿔달라고 했답니다.
본당에서는 물론이고 관계자 분들과 신자 분들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부임받은 첫날 왠 여자가 성당에 전활 걸어 다짜고짜 신부를 바꿔달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전활 받으시는 분이 당연히 거절을 했고 통화를 마친 후 이름을 동생에게 알려줬는데 동생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더랍니다. 통화 과정에서 매우 불쾌하셨다는 것은 덤이구요.
그러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동생은 몹시 당황스러웠으며 이름을 떠올려봐도 전혀 누군지 모르겠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어떤 여성이 전화를 걸어 신부 바꿔달라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인데요. 세례받은 지 35년이 넘은 저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부임받은 첫날 신부에게는요
특히 평생 순결 서약을 맺고 이를 지키며 살아가야하는 성직자들에게는 행동 하나 하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본당 신자들과의 친분도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일정 정도 선을 유지한 채 생활합니다. 더군다나 젊은 여신자 분들과의 사이에선 더욱더 그렇구요.
서품을 한 달 앞두고서는 며칠 집에서 쉬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저랑 당구치러도 가지 않았어요. 행동거지 조심한다구요. 10년을 그렇게 보냈지요. 그런 마음으로 수련한 끝에 부임받은 첫날, 오해 아닌 오해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튿날 사무실 유선전화로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더니 시사in기자라고 했답니다.
결론은 구독 권유.
동생은 어이가 없었다며 웃기만 하는데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처지를 배려하며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뿐더러 게다가 소위 '영업'을 할 때는 가식적으로라도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며 다가서는 것이 기본입니다.
굳이 인간적인 접근이 아닌
'영업'의 성사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대목이지요.
배려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당신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최소한 상대를 당황스럽고 불쾌하게 만들지는 말아야죠.
떠나보내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걱정과 응원 하나 보태자면,
시사in이 자전거를 사은품으로 주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