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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그는 남쪽에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840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2/01 17:50:58

사진 출처 : http://life-no-sense-things.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ELgEfuZ34hk





1.jpg

황동규달밤

 

 

 

누가 와서 나를 부른다면

내 보여 주리라

저 얼은 들판 위에 내리는 달빛을

얼은 들판을 걸어가는 한 그림자를

지금까지 내 생각해 온 것은 모두 무엇인가

친구 몇몇 친구 몇몇 그들에게는

이제 내 것 가운데 그 중 외로움이 아닌 길을

보여 주게 되리

오랫동안 네 여며온 고의춤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두 팔 들고 얼음을 밟으며

갑자기 구름 개인 들판을 걸어 갈 때

헐벗은 옷 가득히 받는 달빛 달빛







2.jpg

나혜경담쟁이덩굴의 독법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이 저랬던가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고

지문이 닳도록 아픈 독법으로 기어오른다

한번에 다 읽지는 못하고

지난해 읽다만 곳이 어디였더라

매번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다 보면 여러 번 손닿는 곳은

달달 외우기도 하겠다

세상을 등지고 읽기에 집중하는 동안

내가 그랬듯이 등 뒤 세상은 점점 멀어져

올려다보기에도 아찔한 거리다

푸른 손끝에 피멍이 들고 시들어버릴 때쯤엔

다음 구절이 궁금하여도

그쯤에선 책을 덮어야겠지

아픔도 씻는 듯 가시는 새봄이 오면

지붕까지는 독파해 볼 양으로

맨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읽기 시작하겠지







3.jpg

김상미사랑

 

 

 

그는 남쪽에 있다

남쪽 창을 열어놓고 있으면

그가 보인다

햇빛으로 꽉 찬 그가 보인다

 

나는 젖혀진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젖혀진 내 목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난다

붉은 꽃들은 피어나면서 사방으로 퍼진다

그의 힘이다

 

그는 남쪽에 있다

그에게로 가는 수많은 작은 길들이

내 몸으로 들어온다

몸에 난 길을 닦는 건 사랑이다

붉은 꽃들이 그 길을 덮는다

새와 바람과 짐승들이 그 위를 지나다닌다

 

시작과 끝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남쪽에 있다







4.jpg

김수영절망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5.jpg

박경리어머니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 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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