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대통령이 되어 장관을 뽑는다면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뽑으시겠습니까?”
어느 참모가 안희정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이에 대해 안희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본 적이 있는 사람인지를 가장 먼저 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참모는 안희정의 삶에서 어떤 모습이 저런 대답을 나오게 한 배경이었을까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은 많겠지만, 진정 자기 것을 내려놓으면서까지 공공의 이익을 추구했던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급작스럽게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시점에 직면해 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연말 쯤 실시될 대선을 생각하며 차기 국가지도자가 될 사람이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국민들이 숙고할 시간적 여유가 있을 터인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모두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것을 갖고 자신의 이해관계와 국가공동체의 손익을 구분할 줄 몰랐던 최고지도자의 사고방식이었다. 이는 사고방식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기 것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내려놓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특유의 멘탈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권력자는 먼저 양보하고 내려놓아야 국민들이 따르는 지도자가 된다는 개념 자체가 탑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어진 권력은 영광이 아니라 재앙이었던 것이다. 본인이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고 지금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국민을 화나게 하는 희비극의 원천이다.
야당의 집권이 당연시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1월 25일자 문화일보 조사에 의하면 야권 내에서 거론되는 후보인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중에서 어느 누구를 여권 후보와 견줘 여론조사를 해도 너끈히 정권교체에 성공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국민들의 열망이 정권교체로 향하고 있으며, 그 열망이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임을 나타낸다.
이 시점에서 민주화 세력은 경선 과정에서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민주당이 선출한다는 생각으로 경선 과정에 임해야 한다. 이는 국민이 우리 세력에게 주는 막중한 책임인 동시에 역사가 주는 엄혹한 시험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MB와 박근혜라는 실패작을 만들어낸 보수 세력을 반면교사로 삼아, 몇 세기 동안 지속될지 모를 평가에 대비하여 최선의 후보를 만들어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제시하고 싶은 기준 하나는 ‘자기 것을 진정 내려놓아 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지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뤄진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는 우리가 미처 민주주의 훈련을 제대로 쌓기도 전에 사회를 선진국 언저리로 올려놓았다. 시민적 타협 의식이 성장하기 전에 시장적 권리의식의 과다 성장하는 바람에 이른바 ‘갑질’ 사회를 만들어버렸다.
1948년 일거에 도입된 보통선거는 의회민주주의의 선구자라 불리는 영국과 비교해도 불과 20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엄청난 역사적 비용을 지불하고 쟁취한 선거 제도가 대한민국은 역사적 선물로 주어졌다. 이 선물은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르고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완전하게 우리의 자산이 되었다.
대한민국 눈앞에 보이는 문제들의 해결 실마리가 쉽게 잡힐 듯 하여도 우리에게 잡히지 않는 것은 그만큼 시간의 축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정말로 그 값을 대신 치러줄 수 있는 권력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구시대적 지도자들만이 존재해왔다. MB는 개발독재시대의 기업인이었고, 박근혜는 그 시대 최고권력자의 딸이다. 비극은 여기에 있었다. 군림하였을 뿐, 리드하지 않았다. 리더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 것을 내려놓으며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없었다. 여기서 MB의 4대강 강행이 나타났고, 국민이 죽어가는 상황에 대해서 최고권력자가 당연히 느껴야 할 고뇌 같은 것을 박근혜에게서 발견할 수 없었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함께 나오는 젊은날의 동영상에 이명박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이제 내려놓을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원칙과 공공선,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지도자를 골라야 한다.
그래서 안희정이다.
젊은 날의 희생은 누구에게나 무용담처럼 존재한다. 무용담이 아닌 오랜 삶의 여정에서 묻어난 지속된 희생의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386전략가였던 안희정은 노무현 대선 캠프에서 빛이 나는 역할을 맡지 않았다. 안살림을 맡았다. 누구에게 알아 달라 하지도 않았고, 나서지도 않았다. 필요한 일이고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한 곳에 그가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는 대선 자금이라는 구시대적 문제를 본인이 오롯이 떠앉고 감옥에 갔다. 감옥에 가는 순간까지 자신을 엄벌에 처해서 새로운 공공선을 창출하는데, 자신이 기꺼이 죽어 썩어나가는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고 하였다.
말이 쉽지 무지 어려운 일이었다.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를 집권 기간을 그는 자기 것을 몽땅 내려놓고 야인으로 보냈다. 흔한 사면복권도 마다하였고, 다녀와서도 얻을 수 있는 임명직 자리 하나 탐을 내지 아니하였다.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랬기에 자신의 빚을 갚아달라 하지 않는 안희정을 두고 노무현은 하염없는 눈물만 흘려야 했다. 누가 그러라 했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하였기에 그 길을 갔을 것이다.
오랜 인고의 세월이 지나고 독자적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또다시 그의 정치적 재기는 좌절되었다. 남이 받은 대선자금까지 책임지고 감옥에 갔다 온 일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당을 위해 한 일을 가지고 당이 다시 책임을 묻는 사태를 맞이한다면, 많은 정치인들이 탈당을 선택한다. 탈당은 한국정치사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안희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버티고 나서 그에게 도지사의 자리가 주어졌다. 만만치 않은 보수적 환경을 갖고 있는 충청남도에서 이뤄낸 성과였다. 그것도 재선의 고지를 무난하게 올랐으니 안희정의 정치력이 갖는 강점이 무엇인지 분석해봐야 할 것이다.
결국은 내려놓음이다.
만약 이기려고만 마음먹었다면 여소야대 충청도의회와 늘 싸움박질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려놓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경제적 이해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더 내려놓기 힘든 것이 주도권 싸움이고 이데올로기다.
우리가 겪는 이데올로기 대립현상은 바로 내려놓음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박근혜의 실정이 드러난 지금에도 태극기를 앞세운 극우 집회가 존재하는 것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공공선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믿는 굳건한 자존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 자존심을 내려놓는 훈련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는 암울하다.
민주주의란 양보와 타협의 과정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힘은 내 것도 내려놓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자세이다. 희생이나 봉사정신만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갈 수 없다. 양보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거기로부터 타협점을 끌어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제도로 풀고 시스템으로 공공선을 창출해낼 수 있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만이 링컨이 미국을 재창조해내었던 것처럼 하나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안희정을 그렇게 충남도의회를 설득해왔다. 무상급식을 실시할 때도 안희정은 서두르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야 비로소 이 정책의 추진을 의논해보자는 자세로 임하였다. 여소야대 지방의회의 반발 속에서 무상급식이 이념대립의 극심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 충남도의회만은 그렇지 않았다. 정치적 줄다리기는 있었지만, 안희정이었기에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십은 바로 내려놓음의 리더십이다.
이걸 할 줄 아는 정치지도자만이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 문재인이 그럴 수 있을까? 이재명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안희정에게는 분명 이 둘에게 없는 장점이 있다.
우리가 어떤 후보를 내놓아도 당선시킬 수 있다면,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최선의 후보를 선택해 내놓아야 한다.
이게 역사와 국민이 우리세력에 부여하는 준엄한 책무이다.
출처 | https://www.facebook.com/ahj2eu/posts/12270440873859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