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사랑에 빠진 게 분명했습니다
게시물ID : lovestory_840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4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29 18:05:59
사진 출처 : http://allthatlike.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IdsQf3xhD3s




1.jpg

오세영바람의 노래

 

 

 

바람 소리였던가

돌아보면

길섶의 동자꽃 하나

물소리였던가

돌아보면

여울가 조약돌 하나

 

들리는 건 분명 네 목소린데

돌아보면 너는 어디에도 없고

아무데도 없는 네가 또 아무데나 있는

가을 산 해질녘은

울고 싶어라

 

내 귀에 짚이는 건 네 목소린데

돌아보면

세상은

갈바람 소리

갈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







2.jpg

박재삼나무

 

 

 

바람과 햇빛에

끊임없이 출렁이는

나뭇잎의 물살을 보아라

 

사랑하는 이여

그대 스란치마의 물살이

어지러운 내 머리에 닿아

노래처럼 풀려 가는 근심

그도 그런 것인가

 

사랑은 만 번을 해도 미흡한 갈증

물거품이 한없이 일고

그리고 한없이 스러지는 허망이더라도

아름다운 이여

저 흔들리는 나무의

빛나는 사랑을 빼면

이 세상엔 너무나 할 일이 없네







3.jpg

장수현장자(莊子)의 맨발

 

 

 

광화문역 지하계단에 웅크려 잠든 사내

얼룩무늬 부전나비 같은 맨발을 보았지

 

그 사내 해몽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었지

 

헐벗은 아이들 그렁그렁 매달고

무수히 짓밟히며 거리를 떠돌았을

저 순한 맨발의 전생은

나비가 아니었을까

 

퇴화된 날개 접고 절뚝이며 꿈길 가는

장자(莊子)의 젖은 맨발 가만히 엿보았지

 

가파른 생()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지







4.jpg

홍수희능소화 꽃잎에 울다

 

 

 

한 발짝만

단 한 발짝만 물러나면

내가 보일텐데요

내 슬픔이 보일텐데요

내 분노의 정체도 보일텐데요

내가 내게서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

이리도 어려워요

돌아가는 세상이야기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

이리도 어려워요

한때는 그리도 쉬워 보이던 것

내 웃음소리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밤낮 이글거리는 머릿속

한 발짝만 물러서서 바라본다면

저 헝클어져 치열한 파도의 소용돌이

잠잠해질 것 같은 데도요

빗줄기 속 불면의 밤들은 아랑곳없이

아스팔트는 뜨겁게 침묵하는데

주홍빛 능소화만 흐드러지게 피었어요

그래서 그런데 눈물만 나요







5.jpg

천종숙한 알의 사과를 위하여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어린 나무에게

날마다 해가 머무르다 가곤 했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시침 뚝 떼고 서 있는 나무가

아무래도 수상쩍었습니다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성숙해갔습니다

반질반질 화색이 도는 이파리

도톰하게 물이 오른 장딴지

사랑에 빠진 게 분명했습니다

아무튼 모른 척 하기로 했습니다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그들의 애정 행각은

작은 나무가 휘어지도록 드러났습니다

수나귀와 암말이 만나면 노새가 태어나듯이

해와 나무가 만나 한 알의 사과를 맺은 것 입니다

해를 꼭 빼닮은 열매들은

아기 볼처럼 탐스러웠습니다

해와 나무의 뜨거운 사랑을

한 입 스윽 베어 문 날 밤

나는 한 알의 사과처럼

그에게 스미고 있었습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