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8강 길목에서 '아트사커' 프랑스와 '전차군단' 독일이 만났다. 독일이 마츠 훔멜스의 선취골을 잘 지켜내며 0:1 승리를 따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프랑스는 무뎠고, 독일을 단단했다.' 남미와 북중미의 강세속에 살아남은 두 유럽 강호의 경기를 되짚어본다.
90분 뒤에는 한 사람만 웃을 수 있다
(사진 출처 : theprideoflondon)
▶ 16강전에서 사용한 전술에 변화를 준 양팀
양팀은 16강전에서 각각 나이지리아와 알제리에 고전했는데 이것은 이날 경기에서의 전술 변화로 이어졌다. 먼저 독일의 전술에는 이전 경기와 두 가지 다른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람을 오른쪽 풀백으로 내리고 케디라와 슈바인슈타이거를 중원에 배치한 것이다. 프랑스의 마투이디-포그바로 이루어진 강한 피지컬을 앞세운 중원에 대응하기 위한 독일의 전략으로 보였다. 두번째는 월드컵 최다골 기록 경신을 노리는 클로제가 원톱으로 선발 출전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16강까지 뮐러를 펄스 나인(False Nine)으로 기용하며 제로톱을 구사하던 뢰브 감독이 알제리전에서 고전했던 것을 극복하기 위해 공격진에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16강전에서 사용했던 지루와 벤제마의 공존을 버리고, 벤제마를 원톱으로 기용하고 좌우 날개에 발부에나와 그리즈만을 배치하며 변화를 줬다. 이는 나이지리아전에서 지루와 벤제마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고전한 것을 재현하지 않으려는 데샹 감독의 의도로 보였다. 중원에는 16강까지 위력을 발휘한 단단한 조합, 마투이디-포그바가 선발로 나섰다. 중앙 수비는 평균나이 26.5세의 젊은 조합인 사코-바란이 나섰는데, 37세의 백전노장 클로제와의 맞대결이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고공헤딩을 선보이며 프랑스 영공을 유린한 마츠 훔멜스
(사진 출처 : huffingtonpost)
▶ 전반 중원 싸움에서 프랑스를 압도한 독일
프랑스는 전반 6분 발부에나가 왼쪽측면에서 띄어준 공을 벤제마가 논스톱 슛으로 연결했으나 골대 왼쪽으로 빗나갔다. 발부에나의 가벼운 몸놀림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는데, 자신을 마크한 독일의 케디라를 가볍게 재쳐내고 벤제마에게 크로스를 연결했다. 이후에도 발부에나는 프랑스의 몇 안되는 찬스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다.
하지만 프랑스의 공세는 여기까지였고, 이 순간 이후부터 독일은 중원 싸움에서 프랑스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슈바인슈타이거-케디라 조합은 프랑스의 마투이디-포그바에 빌드업과 압박에서 우위를 보였고 피지컬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3선에서 올라온 공을 이어받은 독일의 창조적인 2선 공격진은 차츰 기회를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전반 11분 외질의 패스를 받은 크로스가 마투이디에게 파울을 당하며 프리킥 상황이 찾아왔다.
다소 먼거리로 보였지만 크로스가 정확한 크로스를 올렸고 후멜스가 타점 높은 헤딩을 선보이며 독일의 선취골을 만들어냈다. 요리스가 몸을 날려봤지만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코스였다. 포르투갈전에 이은 후멜스의 멋진 월드컵 2호골 이었다. 후멜스는 자신의 마크맨인 바란을 진행방향과 오른손을 적절히 활용하며 밀어내고 헤딩을 성공시켰다. 프랑스의 어린 센터백은 독일의 영리한 세트피스 앞에 빈틈을 노출하고 말았다.
이후 독일의 공세는 이어졌고 프랑스의 두 센터백은 지속적으로 자신이 누구를 마크해야 할지를 헷갈려 하는 모습이었다. 경험많은 에브라가 수비진에 버티고 있었지만 나머지 수비진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이 같은 수비 조직력 저하는 독일의 빠른 공격진에 뒷공간을 계속 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전반 23분, 클로제가 케디라-뮐러-람으로 이어진 절묘한 공간패스를 받기 위해 프랑스의 뒷공간을 침투했지만 볼터치가 아쉬웠고, 이어지는 상황에서 드뷔시와 경합 도중 넘어졌지만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드뷔시가 클로제의 유니폼을 잡고 누르는 듯한 상황이었지만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중원 싸움에서 독일에 완벽히 밀린 프랑스는 전반 30분 이후 빌드업을 포기하고 롱볼에 의한 역습을 시도했는데 이는 꽤나 유효했다. 전반 33분 독일의 뒷공간으로 침투하며 롱볼을 받아낸 그리즈만의 크로스, 발부에나의 날카로운 슈팅이 이뤄지며 전술 변화가 먹힌 듯 했지만 노이어의 슈퍼세이브에 막히고 말았다. 이후 프랑스가 별다른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이대로 전반 종료.
▶ 단단한 독일의 포백 앞에 아트사커는 창조성을 잃었다
후반전 들어서 독일은 수비라인을 내리고 빠른 카운터 어택과 세트피스 상황을 노렸다. 코너킥, 프리킥 상황에서 후멜스는 지속적으로 프랑스 페널티 박스 상공을 위협했고, 마크맨 바란은 그의 고공점프를 따라가지 못했다. 후반 초반 잠시 소강 상태에 머물던 경기는, 후반 초중반으로 넘어가며 독일의 미드필더진의 느린 수비가담을 틈탄 프랑스의 공세로 넘어가는 듯 했다. 프랑스는 발부에나를 중심으로 빠른 원투 패스로 공간 침투를 시도했지만 골로 이어질 만한 결정적인 기회는 만들지 못했다. 이것이 전부였고 다시 독일의 공세가 이어졌다. 클로제를 슈얼레로 교체하며 빠른 역습을 노리던 독일은, 후반 23분 사코의 패스 미스를 가로챈 공이 뮐러에게 연결되며 득점 기회를 맞았으나 골로 연결하지는 못했다.
창조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며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한 프랑스는 후반 28분경 카바예를 빼고 로익 레미를 투입하며 공격의 활로를 개척하려 했다. 이 시도는 후반 30분 전후 프랑스의 4차레의 슛팅으로 이어졌다. 그 중 2선에서의 뒷공간 침투로부터 나온 크로스를 받은 벤제마의 슛팅은 가장 결정적인 기회였지만 독일의 수비진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몸을 날려 막아냈다. 특히 후멜스와 람의 집중력은 가히 철옹성과 같았다. 집중력을 유지한채 라인을 내린 독일의 수비진을 공략하기에 프랑스의 공격진은 창조성이 부족해 보였다. 2012/13 UEFA 최우수선수에 빛나는 리베리의 부재가 아쉬웠던 상황이었다. 조별리그에서의 상대 국가들은 리베리를 제외한 나머지 공격진들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상대였지만, 진정한 우승후보들만 살아남는 토너먼트에서 리베리가 빠진 프랑스의 아트사커는 독일전차의 위용앞에 무력했다.
경기는 막바지로 접어들었고 프랑스의 계속된 공격이 무위로 그치자 독일은 이를 빠른 역습으로 이어나갔다. 측면으로 침투한 외질이 낮고 빠르게 올려준 공을 슈얼레가 왼발슈팅으로 연결했으나 평범하게 굴러갔다. 왼발에 대포를 장착한 포돌스키였다면 어땠을까, 자연스레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이어지는 에브라의 패스미스 상황에서 뮐러가 오른쪽으로 깊숙이 침투한 후 컷백으로 슈얼레에게 밀어줬지만, 다시 한번 평범한 슛팅. 다시 한번 독일의 10번이 그리워지는 상황이었다.
프랑스는 지루까지 투입하며 동점골을 애타게 노렸지만 야속한 시간만 흐를 뿐이었다. 추가시간 4분이 주어졌고, 이마저도 거의 흐른상황에서 프랑스는 마지막 기회를 만들어 냈는데, 벤제마와 지루의 원투패스 이후 벤제마가 각이 없는 상황에서 슛을 시도했으나 노이어가 한 손으로 막아냈다. 경기종료.
▶ 독일이 왜 독일인가를 보여준 뢰브
독일이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낼 것이라는 대회 이전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포르투갈전의 대승은 페페의 퇴장에서 기인한 바가 크고, 2:2로 비긴 가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과 연장 혈투를 벌인 알제리와의 16강전처럼 나머지 경기는 가까스로 이기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뢰브 감독의 독일은, 항상 그래왔듯이, 강력한 '위닝 멘탈리티'를 선보였다. 람의 위치를 변경하고 슈바인슈타이거-케디라를 기용한 뢰브 감독의 전술적 변화는 프랑스의 중원을 압도했고, 크로스-후멜스로 이어지는 세트피스 공식은 여전히 유효했으며, 빠른 역습과 '수비진의 집중력 + 노이어'를 활용한 안정감 있는 뒷문 걸어잠그기는 뢰브 감독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다소의' 유연함을 선보인 뢰브 감독은 프랑스와의 일전을 승리로 이끌며 자신에 대한 비난을 잠재웠다. 과연 독일이 '우승후보 0순위' 브라질과 만나도 상승세를 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아트사커의 부활은 다음 기회로
(사진 출처 : skysports)
▶ 포스트 지단은 어디에 있나, 묘연한 아트사커의 부활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 인상적인 골폭죽을 이어가며 2010년의 부진을 깔끔히 걷어내고 아트사커 부활의 깃발을 올렸지만, 전차군단의 벽 앞에서 무너지며 부활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뤘다. 마투이디-포그바로 이어지는 3선이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탄탄함은 마켈레레-비에이라를 보유했던 98년의 프랑스를 떠올리게 했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지단이 없었다. 포스트 지단을 찾기위한 노력 속에서, 요앙 구르퀴프와 같은 선수들이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 지단의 빈자리는 너무도 크기만 하다. 진정한 포스트 지단이 나타날때, 그때가 바로 아트사커의 진정환 부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잉글랜드의 전설적 공격수 개리 리네커는 이미 오래전에 말했다.
'축구는 22명이 90분동안 볼을 쫓다가 결국 독일이 승리하는 경기다'
[출처] [2014 브라질월드컵] 프랑스 독일 리뷰|작성자 캡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