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우, 소쩍새 울다
저 새는 어제의 인연을 못 잊어 우는 거다
아니다, 새들은 새 만남을 위해 운다
우리 이렇게 살다가, 누구 하나 먼저 가면 잊자고
서둘러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아니다 아니다
중년 내외 두런두런 속말 주고 받던 호숫가 외딴 오두막
조팝나무 흰 등 넌지시 조선문 창호지 밝히던 밤
잊는다 소쩍 못 잊는다 소소쩍 문풍지 떨던 밤
서홍관, 꿈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지
논두렁 개울가에
진종일 쪼그리고 앉아
밥 먹으라는 고함소리도
잊어먹고
개울 위로 떠가는
지푸라기만
바라보는
열 다섯 살
소년이 되어 보는
이문재, 노독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문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 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한명희, 망우리
공동묘지 고랑에서
빈병 줍는 저 늙은이
소줏병 하나에 이십 원씩
하루 벌면 버스표 두 개
하나는 집에 갈 차비
또 하나는 내일 올 차비
죽음에 익숙해지는 재미가 하나
죽음과 가까워지는 재미가
또, 하나
전동균, 저녁별
산비탈 아래
마당 없는 집 문간방에서
쌀 씻는 소리 들린다
온종일 혼자 지낸 뇌성마비 아이가
몸을 비틀며 간신히
울음을 참듯이
이 세상 모든 근심을 제 품에 들여
입 꼭 다물고
떨고 있는 별
그 빛에 기대어
간고등어 한 손 사들고 귀가하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파란만장
하수구 물소리 쏟아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