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하, 별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거리를
빛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허리가 휘어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 발 아래로 구르는 별빛
어둠의 순간 제 빛을 남김없이 뿌려
사람들은 고개를
꺾어 올려 하늘을 살핀다
같이 걷는 이웃에게 손을 내민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의 빛 속으로
스스로를 파묻기 때문이다
한밤의 잠이 고단해
문득, 깨어난 사람들이
새벽을 질러가는 별을 본다
창밖으로 환하게 피어 있는
벌꽃을 꺾어
부서지는 별빛에 누워
들판을 건너간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새벽이면 모두 제 빛을 거두어
지상의 가장 낮은 골목으로
눕기 때문이다
노창선, 섬
우리는 섬이 되어 기다린다 어둠 속에서
오고 가는 이 없는 끝없이 열린 바다
문득 물결 끝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그러나 넋의 둘레만을 돌다가 스러지는
불빛 불빛, 불빛, 불빛
외로움이 진해지면
우리들은 저마다의 가슴 깊이 내려가
지난날의 따스한 입맞춤과 눈물과
어느덧 어깨까지 덮쳐오면 폭풍과
어지러움 그리고 다가온 이별을 기억한다
천만 겁의 일월(日月)이 흐르고
거센 물결의 뒤채임과 밤이 또 지나면
우리들은 어떤 얼굴로 만날까
내가 이룬 섬의 그 어느 언저리에서
비둘기 한 마리 밤바다로 떠나가지만
그대 어느 곳에 또한 섬을 이루고 있는지
어린 새의 그 날개짓으로
이 내 가슴속 까만 가믐을
그대에게 전해 줄 수 있는지
김기택, 쥐
구멍의 어둠 속에 정적의 숨죽임 뒤에
불안은 두근거리고 있다
사람이나 고양이의 잠을 깨울
가볍고 요란한 소리들은 깡통 속에
양동이 속에 대야 속에 항상 숨어 있다
어둠은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굶주림이 있는 곳
몽둥이와 덫이 있는 대낮을 지나
번득이는 눈과 의심 많은 귀를 지나
주린 위장을 끌어당기는 냄새를 향하여
걸음은 공기를 밟듯 나아간다
꾸역꾸역 굶주림 속으로 들어오는 비누 조각
비닐 봉지 향기로운 쥐약이 붙어 있는 밥알들
거품을 물고 떨며 죽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는
아아 황홀하고 불안한 식욕
전성호, 허기
내 몸속으로 들어온 고래
오장육부를 휘돌다 배불뚝이 복어 되어
바다로 빠져나간 뒤
나는 자꾸 휘청휘청
지구가 어지럽다
바다 위 쪽배가 가만 떠 있을 수 없듯
시간이 흐를수록 뒤틀리는 내장
뭔가 속을 채워야 하는 식욕의 꿈틀림으로
이마엔 식은땀이 맺힌다
눈밭 파헤쳐 마른 풀을 뜯다 죽어간
양의 위속에는 돌멩이만 가득 있었다는
몽골에서 들은 이야기처럼
내 위 속에는 지금
바닷물이 차고 있다
고래를 위해
신경림, 내가 살고 싶은 땅에 가서
이쯤에서 길을 잃어야겠다
돌아가길 단념하고 낯선 길 처마 밑에 쪼그려 앉자
들리는 말 뜻 몰라 얼마나 자유스러우냐
지나는 행인에게 두 손 벌려 구걸도 하고
동전 몇닢 떨어질 검은 손바닥
그 손바닥에 그어진 굵은 손금
그 뜻을 모른들 무슨 소용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