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cagedxmind.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15hvl4-Xn9k
이재무, 벼랑
벼랑은 번번이 파도를 놓친다
외롭고 고달픈
저 유구한 천년만년의 고독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철썩철썩 매번 와서는 따귀나
안기고 가는 몰인정한 사랑아
희망을 놓쳐도
바보같이 바보같이 벼랑은
눈부신 고집 꺾지 않는다
마침내 시간은 그를 녹여
바다가 되게 하리라
도종환, 시래기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우리 주위에 시래기가 되어
생의 겨울을 나고 있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허수경, 몽골리안 텐트
숨죽여 기다린다
숨죽여, 이제 너에게마저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척을 내지 않을 것이다
버림받은 마음으로 흐느끼던 날들이 지나가고
겹겹한 산에
물 흐른다
그 안에 한 사람, 적막처럼 앉아
붉은 텔레비전을 본다
문복주, 우주로의 초대
우주의 비가 내 마음의 창을 두들기던 날
나는 한 장의 초대권을 받는다
당신을 우주로의 여행에 초대합니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나가 서 있으니
혜성이 날아와 나를 싣고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을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간다
이번엔 번개를 탈까요
내 영혼에 번개의 꼬리가 달린다
여기가 당신이 떠나왔던 고향
이 블랙홀을 지나면 미래에 살 당신의 별이 나옵니다
하느님과 악마가 사는 이중 퀘이사의 별나라에 가볼까요
우주는 열려 있고 꿈꾸는 것은 자유
상상과 유머를 가지고 우주를 마음껏 즐겨보세요
우주의 비가 지상에 떨어지고 마음 젖는 날이면
나는 집 앞 정류장을 서성거린다
기쁨의 날들과
아픈 사랑의 날들을 찾아
다시 어느 별인가로 떠나고 싶어
나는 우주로의 초대를 기다린다
김익두, 도라지꽃
하얗고 단단한
당신의 치아
혹은
가물한 쪽빛 하늘
팍팍하게 메마른
석별 바위틈
이 나라 삼천리
이르는 곳곳마다
꼿꼿이 뿌리내리고
맑게 그리운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