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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상처를 위하여
게시물ID : lovestory_837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34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10/30 18:40:54

사진 출처 : https://fadiabh23.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qGToN8Afe28





1.jpg


안상학선어대 갈대밭

 

 

 

갈대가 한사코 동으로 누워 있다

겨우내 서풍이 불었다는 증거다

 

아니다 저건

동으로 가는 바람더러

같이 가자고 같이 가자고

갈대가 머리 풀고 매달린 상처다

 

아니다 저건

바람이 한사코 같이 가자고 손목을 끌어도

갈대가 제 뿌리 놓지 못한 채

뿌리치고 뿌리친 몸부림이다

 

모질게도

입춘 바람 다시 불어

누운 갈대를 더 누이고 있다

아니다 저건

갈대의 등을 다독이며 떠나가는 바람이다

 

아니다 저건

어여 가라고 어여 가라고

갈대가 바람의 등을 떠미는 거다






2.jpg

이재무감나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 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 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 보는 것이다






3.jpg

최종천상처를 위하여

 

 

 

박씨의 검지는 프레스가 먹어버린

반 토막짜리다 그런데 이게

가끔 환하게 켜질 때가 있다

그가 끼던 목장갑을 끼면

내 손가락에서 그의 검지 반 토막이

환하게 켜지는 것이다

박씨는 장갑을 낄 때마다

그 반 토막의 검지가 가려워서

목장갑 손가락을 손가락에 맞게 접어 넣는다

그 접혀 들어간 손가락은 때가 묻지 않는다

환하게 켜지는 검지의 반 토막이 보고 싶어

나는 그가 끼던 목장갑을 끼곤 하는데

그러면 전신에 전류가 흐르듯 하는 것이다

상처가 켜 놓은 것이 박씨의 검지뿐이랴

과일들은 꽃이라는 상처가 켜 놓은 것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의 얼굴은 꺼져 있다

상처는 영혼을 켜는 발전소다






4.jpg

한용운사랑의 측량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으면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여요






5.jpg

강은교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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