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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출처는 '서초동 0.917'이라는 사법개혁에 관한 책입니다. 주 내용은 검사장 직선제에 대한 내용이지만 검찰총장 직선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스포를 하자면 직선제는 해선 안된다는 거구요, 마지막에 3줄 요약 해놨습니다.
1심에 지검장, 2심에 고검장, 3심에 검찰총장이 있다. 다 검사장급 이상이다. 이 가운데 고검장 직선제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고검장이란 수사에 관한 한 별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수사하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총장 직선제를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직선제로 정당성을 확보한 검찰총장이 얼마나 힘이 셀지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사장 직선제란 주로 지검장 직선제를 뜻한다. 가령 광주지검장을 광주 시민들의 투표로 뽑자는 게 검사장 직선제의 요지다. 그럼 검사장 직선제를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결국 교육감 선거랑 비슷하다. 막상 직선제가 치러지면 투표율은 채 20퍼센트에 못 미칠 것이다. 지자체장, 예컨대 광주시장 선거와 함께 치러질 경우는 물론 이보다는 투표율이 조금 높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시장과 검사장이 같은 정치 성향을 가진 후보가 당선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사람들은 검사장에 별로 관심이 없다. 자식 없는 사람이 교육감에 관심 없는 것과 비슷하다. 검사장이란 범죄 쪽 물을 먹은 사람들이나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직책이다.
최근 10여 년간 선거 결과를 놓고 판단해보자. 호남 쪽에는 비교적 진보 성향의 검사장 후보가 당선될 것이다. 대구 쪽에는 비교적 보수 성향의 검사장 후보가 당선될 것이 확실하다. 조금 더 극단적인 경우는 서울중앙지검이다.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가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울중앙지검에는 보수 냄새를 질게 풍기는 검사장이 들어올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어디로 이사 갈지 선택하면 된다. 집회및시위에 관한법률에 걸릴 것 같은 사람은 진보 성향의 후보가 당선될 곳으로, 기업 범죄를 저지를 낌새가 농후한 사람은 보수 성향의 후보가 유력한 곳으로 이사 가면 조금 더 안전해질 것이다.
총선이나 대선을 치르고 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호남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영남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가 주로 선거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아니, 검사가 그렇게 옹졸한가? 검사가 옹졸해서가 아니다. 직선제 때문이다. 직선제가 뭔가? 유권자의 뜻에 따르는 게 직선제다. 결국 검사장도 그 밑에 있는 검사도 유권자의 뜻에 따라 유권자들이 좋아하는 수사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검사장 자신이 선거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른 게 들통날 경우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자기 죄를 자기가 수사하는 기막힌 상황이 되는 것이다.
권한을 주면 그 무게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세가 그렇다.
"나더러 어떻게 이 민족을 이끌라고 이렇게 큰 권한을 주십니까?"
이게 모세의 기도다.
하지만 수양이 부족한 사람들은 권한을 주면 우쭐해 한다. 주위에서 영감님이라고 몇 번만 불러주면 걸음걸이가 바뀐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한두 명 본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검사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지금도 있을지 모른다.
검사에게 권한을 준 것은 첫째, 잔챙이 잡으라고 준 게 아니다. 둘째, 선량한 기업인 잡으라고 준 것도 아니다. 셋째, 기업인들 겁주고 다니라고 준 것도 아니다. 넷째, 지역 유지와 결탁해서 동네 말아먹으라고 준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철이 없고 수양이 부족한 검사들은 지역에 내려가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있다.
그런데 아예 붙박이로 지검장을 지역에 두게 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겠는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각 지검장들은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서로 반대세력에 속하는 대통령, 국회의원, 정치인들에 대한 소환장을 보낼 것이다. 수사 개시를 날마다 선포할 것이다. 검사는 관할을 쉽게 넘을 수도 있다. 대구지검장이 서울이 지역구인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도 있고, 전직 대통령을 소환할 수도 있다. 그걸 지방 일간지가 대서특필하고, 중앙지가 받고, 방송이 받고, 불쌍한 국민들은 그 난장판을 거의 매일 봐야 한다. 선거 무렵에는 반대편을 수사한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무슨 부정선거라고 연일 수사에, 기소에 조용할 날이 하루도 없을 것이다. 국민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 직선제 검사장들의 돈키호테 짓을 봐야 하는가.
설령 이런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정치사건은 직선제 검사장들이 못 건드리게 하고 다 뺏어서 대검찰청으로 올릴 방법이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혹시 그런 방법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한 가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지역 유지와 지방자치단체장, 지역 국회의원, 그리고 직선제 검사장이 같은 배를 타게 되는 사태다. 같은 당 소속에, 동향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의 입법,행정,사법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거기가 향판까지 합세하면 지역은 완전히 초록동색이 된다.
이들이 알음알음으로 저지르고 무마하면서 이끌어갈 지역 살림이 과연 온전해지겠는지 생각해보자.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명목으로 정치인의 후광을 얻은 검사에게 검사장 직분을 맡기면 그가 자신에게 준 권한의 막중함을 뼛속 깊이 인식하면서 모든 사건처리에 신중을 기하고, 공정을 기하고, 불편부당하게, 아무 데도 전화 한 통 걸지 않고, 오직 검사의 직무를 성실히 행할 것 같은가. 자기랑 러닝메이트로 나선 지방자치단체장의 비리를 발견하면, 제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냉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할 것 같은가. 음으로 양으로 선거를 도와준 지역 유지와 지역 국회의원들과의 사사로운 인연을 다 끊고, 멸사봉공의 자세로 토착비리 근절에 앞장설 것 같은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악을 척결한다는 일념으로 오직 유권자들의 편에 서서 정치적 동지를 잡아넣을 것 같은가. 승객도 별로 없는 수많은 경전철과 쓸모없는 터널과 차 안 다니는 다리와 박물관과 놀이공원과 산책로와 혈세로 만든 지역의 흉물들을 다 파헤쳐 부정부패를 일소할 것 같은가. 오히려 이것저것 다 눈감아주고 밤이면 끼리끼리 연회나 베풀면서 세월을 보내다가 선거철만 되면 바퀴벌레처럼 기어나와 한 번 더 찍어달라고 늦은 귀갓길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검찰이 행정부의 입김을 받는 게 나도 싫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입김을 받게 하는 일이다. 말로는 지역 유권자의 통제를 따른다고 하겠지만, 그 유권자가 검사장을 직선으로 뽑은 다음에 검사장이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두겠는가 말이다. 사실상 지역의 여론 주도층 수중에 검찰권이 넘어가는 사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보수 검사장과 진보 검사장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게 될 것이다. 선거철마다 그들의 꿈틀거림을 봐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검찰 사무는 지역 사무가 아니다. 국가 전체의 사무다. 전국 어디에 살든 같은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게 우리나라 사법제도다. 법원이 전국을 관할하듯이, 검찰도 전국을 통일적으로 관할하는 게 맞다. 다만 법원은 행정부 소속이 아니다. 반면에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다. 그래서 행정부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한계가 있다. 법원을 사법기관이라고 하면서 검찰을 같은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검찰이 행정부의 간섭을 덜 받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현행법상으로는 법무부장관이 검찰 일반을 지휘하지는 못하고 검찰총장만 지휘하게 만들어두었다. 그런데 그게 중립성 보장에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게 판명된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중립성 보장에 효과적인 방안을 만들면 된다. 검찰을 법원처럼 독립시키던지, 아니면 정치색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건은 검찰에게 맡기지 말고 특검으로 가게 한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런데 가장 안 좋은 방법은 검찰권을 수원에, 광주에, 서울 강남에, 대구에, 제주에 나눠주는 것이다. 이게 바로 검사장 직선제다.
S시민이 뽑은 S지검장이 어떻게 할지 시나리오를 써보자.
4년 중임을 경우
1. 뽑히고 2년 동안은 정적 수사를 해서 씨를 말린다.
2. 나머지 2년 동안은 재선을 위해서 물불 안 가린다.
4년 단임일 경우
1. 뽑히고 2년 동안은 정적 수사를 해서 씨를 말린다.
2. 나머지 2년 동안은 국회의원이나 S시장이 되려고 물불 안 가린다.
3. 혹시 국회의원이나 S시장이 못 되더라도 절대로 S시를 떠나지 않는다. S지검에 자기 사람을 다 심어놓았으니까.
과연 이 사람이 있는 동안 S시가 더 좋아질까?
아, 무망하다.
3줄 요약
1. 직선제를 할 경우 유권자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에 유권자의 성향대로 수사를 할 것이다.
2. 직선제를 할 경우 선거에만 관심 있지 검찰로써의 임무는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3. 대안은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직선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출처 | "서초동 0.917", 책과함께, 김희균, 노명선, 오경식, 정승환 공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