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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박사모는 있었다
게시물ID : sisa_8375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밝은내일아
추천 : 0
조회수 : 59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1/20 11:33:31
박사모나 어버이연합같은 사람들 보면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있나, 도대체 저런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저러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죠?

단지 인간의 끼리끼리 노는 성향 탓에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을 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예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오늘 그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한일합방 청원.jpg 위안부 보수1.jpg 
 한일합방 청원2.jpg  위안부 보수2.jpg


한일 합방 청원서 (통감에게 올리는 병합 청원)

 

통감 자작 소네 아라스케 각하

대한국 일진회장 이용구 등 1백만 회원은, 대한국 2천만 민중을 대표하여, 황송히 머리 숙여 재배(再拜)하면서, 대일본 천황 폐하를 대신하는 한국 통감 소네 아라스케 각하에게 삼가 글을 바치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귀 대일본 천황 폐하께서는 천명을 받으시와, 지극하신 위엄으로 여러 나라의 화합을 도모하시며, 동양 평화의 중심이 되셨습니다. 경륜의 크심이 하늘과 같고, 황위가 해와 같으니 어찌 장하다 하지 않으리까. 이제 각하께서는 나라 밖에 병권을 맡으시와, 덕을 팔방에 펴고 계십니다. 문무의 교화와 덕택이 초목에까지 미치니 완고하고, 미욱한 백성도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용구 등이 또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감히 2천만 민중을 대표하여 각하에게 호소하고, 간절한 소리가 천황의 귀에 들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나라 만세에 변함이 없을 튼튼한 터전을 오늘날 태평 무사한 시간에 미리 세워 놓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가 지금껏 국시를 정하지 않았다는 탓입니다. 지금껏 경국의 대본을 세우지 않은 탓입니다. 그 국력은 항상 강한 이웃의 형세에 의존함으로써, 민생을 장구하게 할 계책이 마침내 없었던 것입니다. 완고하게 약소만을 지키면서 스스로 시대 조류에 맞지 않은 어리석음을 모릅니다. 이용구 등이 아아, 그 심정을 어찌 말로써 다하리까.

 

만일 귀국 천황 폐하의 지극하신 인덕에 의지함이 아니면, 우리 나라의 몰락과 사직의 폐허는 멀지 않았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임금과 신하가 어찌 태양을 오늘에 우러르며 문명을 장래에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는 귀국과 이해가 이미 상통하여, 정교가  이미 상합하여, 이른바 일촵한의 관계는 좋은 일 궂은 일에 일체를 이루고 있으매, 이 또한 하늘의 뜻이요, 전혀 인력이 아닌 것입니다. 마땅히 이 때로써 그러한 관계를 양국의 청사에 비치고 

 

우리 나라의 허깨비 같은 국시와 구름 같은 국본을 깨쳐 뽑은 후, 우리 2천만 백성과 함께 새로이 시작함으로써 아아, 우리 나라 2천만 백성이 하늘 아래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이에 이용구 등은, 우리 대일본 천황 폐하께옵서 지극하신 인덕과 하늘과 같은 넓으심으로 보위를 무한에 세워, 일·한 합방을 창설하시고, 우리 군신을 만세에 어여삐 여기시와, 황실과 신민이 종시일천, 길이 신성 무궁한 은혜를 입도록 하여 주심을, 황송히 머리 숙여 감히 소원하나이다.

 

바라는 바는 새로운 합방의 힘으로써 양으로는 동방 치안의 근기를 굳혀 동아의 형세를 지탱하고, 음으로는 천리와 인도로 계양하여 세계 열국의 평화를 보임할 뿐  입니다. 길이 모범을 선진 문명한 여러 나라에 널리 편다면 이 또한 지극한 경사요,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이용구 등은 삼가 2천만 민중을 대표하여 충심으로 이를 우러러 하늘에 호소하나이다.

 

- 1909년 12월 4일 일진회 이용구 등 1백만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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