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노동이 적절한 대우를 못 받는다는데 동의한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자본가들이 그걸 막는다던가 아니면 멍청한 사람들이 노조를 부정적으로 봐서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이 천시받는 이유가 일부 사람들의 의견과 횡포 때문이라기 보다는 대부분의 사람이동의하는 방향의 결과로 노동이 천시받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그 어떤 나라보다 24시간 편의점이 많다. 그리고 가장 쉽게 배달 음식을 받아먹을 수 있는 나라다. 그리고 좁은 경험이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각종 서비스 직원들이 훨씬 친절하다.
나를포함해서 여기 오유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저임금을 올리는데 동의할 것이다. 나도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올린다는 말은 많은 24시 편의점들 중에 이윤이 안 나는 많은 점포의 폐점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24시간 편의점이 많이 줄어드는 걸 의미한다. 그건 곧 다시 말해서 그전에 누리던 편리함을 일부 포기한다는 걸 의미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10~11시까지 대형마트의 영업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런 마트를 편리하게 이용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밤늦은 노동은 대형 마트의 직원들이 저녁에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을 빼았는 것과 동일하다. 물론 우리가 마트를 사용하고 지불하는 돈을 사용하여 거래한다는 점이 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감정 노동자들이 불합리한 폭언에 시달린다. 그런데 그 폭언을 퍼붓는 사람은 어디 멀리 외국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이다. 만일 소비자가 아니라 일대일 사람이라면 그렇게 폭언을 쏟아부을수 있을까? 우리는폭언을 쏟아붓더라도 고소를 당하지 않을 소비자의 편리를 받는 대신 돈을 지불한다. 만일 감정 노동자들이폭언을 받을 시 그 소비자는 고소를 받거나 돈을 지불해야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지금처럼 감정노동자들에게 폭언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노조를 부정적으로 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빨갱이라서? 지들이 귀족노조라서? 나는 그게 아니라고 본다. 나는 소비자이고 소비자는 왕인데, 내가 가져야 할 혜택을 그들이 막기 때문이다. 우리는 쌍용 자동차 사태를 보며 노동자들의 권리는 보호되어야 된다는 말한다. 하지만 버스와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해 출퇴근 시간이 몇 배로 늘어난다면 그 노조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을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다고 할 때 그들의 사용자들과만 싸운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노동을 간접적으로 소비하는 소비자와도 싸운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노동자의 권리와 소비자의 편리는 같은 방향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반대 방향입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더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소비자의 편리는 줄어든다.
나를 포함해서 오유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 사회에 가까워진다는 말은 소비자로서 누리던 편리를 일부 포기한다는말과 동일하다. 최저임금을 올린다면 우리는 배달 음식을 이렇게 편리하게 먹을 수 없다. 노동 시간을 줄이는데 동의한다는 말은 밤늦게 먹는 야식 음식을 줄이거나 포기한다는 말과 유사하다. 야근을 줄이자는 말은 당신이 일하는 다른 회사의 피드백이 느려진다는 말과 같다. 느리게 살고 느긋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그럼 관공서에서 받는 증명서 하나에 지금보다 몇 배는 걸리는 시간을 감수해야 된다는 말과 같다.
나는 여기서 결론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자기 바라는 세상이되면 우리가 포기해야 될 것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세상을 원한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을 때 내가 그전에 누리던 불합리한 편리를 포기해야 됨을 알았으면 좋겠다.
ps. 나는 개인적으로 그러함에도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