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철, 별
한겨울 마른 나뭇가지 끝에도
주먹만큼 별들은 매달려
외로워
외로워 말라고
파랗게 빛나는데
아직은 심장에 따뜻한 피 흐르는
내 가슴과 어깨 위에
어찌 별들이 맺혀 빛나지 않겠는가
사람들아 나를 볼 때도
겨울 나무를 만날 때도
큰 눈에 어린 눈물보다 더 큰
별이 거기 먼저 글썽이고 있음을 보라
마종하, 안개의 개안
적십자병원에서 개안 수술을 받았다
눈에 늘 안개가 끼어 있는 백내장
흐리게 떠돌던 팔 다리 묶인 채, 혈안이 되어
인제 세상 더 볼 것 없다는 말인지
안개 속에서 아버지는 잠적했으며
안개 끝에서 어머니마저 잃었다
그리하여 나도 결국 안개가 되었으며
눈 시린 아내는 말할 것 없고
안개 낀 나를 따라, 두 딸과 한 아들도
안개 속에서 허망하고 뼈저린 삶
딸들에겐 선명한 안개꽃을
아들에겐 안개 터는 날개를
안개의 자본주의를 헤집어나가야 한다
안개의 사회주의는 안개를 털어야 하는 것이다
개안의 의미를 나는 믿지 않으며
개안의 의미를 나는 믿는다
백내장 수술 후 눈은 새로 열렸으며
나는 다시 이 지상을 보게 되었다
세상과 나는 변함없이 변하였으며
새로 피는 안개꽃은 안개가 아니라는 것과
안개 걷은 집, 안개 터는 나무
그들로 인하여 나도 다시 보였다
이장욱, 객관적인 아침
객관적인 아침
나와 무관하게 당신이 깨어나고
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거리의 어떤 침묵을 떠올리고
침묵과 무관하게 한일병원 창에 기댄 한 사내의 손에서
이제 막 종이 비행기 떠나가고 종이 비행기
비행기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하늘은
난감한 표정으로 몇 편의 구름, 띄운다
지금 내 시선 끝의 허공에 걸려
구름을 통과하는 종이 비행기와
종이 비행기를 고요히 통과하는 구름
이곳에서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지금 그대와 나의 시선 바깥, 멸종 위기의 식물이 끝내
허공에 띄운 포자 하나의 무게와
그 무게를 바라보는 태양과의 거리에 대해서라면
객관적인 아침. 전봇대 꼭대기에
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
희미한 풍경 같아서
이시영, 물결 앞에서
울지 마라
오늘은 오늘의 물결 다가와 출렁인다
갈매기떼 사납게 난다
그리고 지금 지상의 한 곳에선
누군가의 발짝 소리 급하게 울린다
울지 마라
내일은 내일의 물결 더 거셀 것이다
갈매기떼 더욱 미칠 것이다
그리고 끓어 넘치면서
세계는 조금씩 새로워질 것이다
황인숙, 나
이제 나는 나 자신의 찌꺼기인가?
아직 나 자신인가?
아니, 고쳐 물어보자
나는 나 자신의 찌꺼기인가?
나 자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