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uni-corns-and-such.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IwfNEfer3SE
이근배, 노을
어디 계셔요
인공 때 집 떠나신 후
열한살 어린 제게
편지 한 장 주시고는
소식 끊긴 아버지
오랜 가뭄 끝에
붉은 강철 빠져나가는
서녘 하늘은
콩깍지동에 숨겨놓은
아버지의 깃발이어요
보내라시던 옷과 구두
챙겨드리지 못하고
왈칵 뒤바뀐 세상에서
오늘토록 저녁해만 바라고 서 있어요
너무 늦은 이 답장
하늘 끝에다 쓰면
아버지
받아 보시나요
나해철, 등을 껴안을 때
고등어를 굽고 있는 당신의 등을
견딜 수 없어 달려가
껴안을 때
훗날 당신이 없을 때라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될
정신의 합일을 경험하는 거야
살과 뼈가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불가능을 실현하고 있는 거야
내 정신이 당신과 하나가 되었는지
내 육체가 당신과 하나가 되었는지
내 정신을 바람으로
내 육체를 불로 만드는 거야
살과 뼈를 기고 태워서
바람과 불이 되어 당신과 섞이어
하나가 되고자 하는 거야
하나가 되고자 내 생을
당신 속에 집어넣고 또 집어고
봉인을 하는 거야
이산하, 쇠똥구리
소똥을
탁구공만하게
똘똘 뭉쳐
뒷발로 굴리며 간다
처음 보니 귀엽고
다시 보니
장엄하다
꼴을 뜯던 소가
무심히 보고 있다
저녁 노을이 지고 있다
주용일, 어깨의 쓸모
어스름녘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어깨에 얹혀오는
옆 사람의 혼곤한 머리
나는 슬그머니 어깨를 내어준다
항상 허세만 부리던 내 어깨가
오랜만에 제대로 쓰였다
그래, 우리가 세상을 함께 산다는 건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피로한 머리를 기댄다는 것 아니겠느냐
서로의 따뜻한 위로가 된다는 것 아니겠느냐
김용택, 시를 쓰다가
시를 쓰다가
연필을 놓으면
물소리가 찾아오고
불을 끄면
새벽 달빛이 찾아온다
내가 떠나면
꽃잎을 입에 문 새가
저 산을 넘어와
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