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첫사랑
소년이 내 목소매를 잡고 물고기를 넣었다
내 가슴이 두 마리 하얀 송어가 되었다
세 마리 고기떼를 따라
푸른 물살을 헤엄쳐 갔다
손택수, 물새 발자국 따라가다
모래밭 위에 무수한 화살표들
앞으로 걸어간 것 같은데
끝없이 뒤쪽을 향하여 있다
저물어가는 해와 함께 앞으로
앞으로 드센 바람 속을
뒷걸음질치며 나아가는 힘
저 힘으로 새들은 날개를 펴는가
제 몸의 시윗줄을 끌어당겨
가뜬히 지상으로 떠오르는가
따라가던 물새 발자국
끊어진 곳 쯤에서 우둑하니 파도에 잠긴다
문정희, 사막에서 만난 꽃
눈부신 맨살 드러낸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몇 년째 묵언 중인 스님을 만났다
햇살 부서져 흰 것뿐인 벌판에
기괴하게 몸을 튼 사라쌍수나무
기쁜 웃음 만발한 바위로 앉은
청화스님, 눕지 않고 그대로 십수년이라
서울서 간 나에게 백지 내밀던
사막에 핀 한 송이 꽃, 오늘 아침에
그 꽃을 태우는 다비 소식 실렸다
그야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권대웅, 십우도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를 끌고 가네
길은 멀고 날은 저무는데
돌아보니 첩첩 빌딩이네
빨리 가려다가 더 늦게 가는 자들이여
오토바이를 타고 간 사람이나 비행기를 타고 간 사람이나
모두 오리무중이네
송찬호, 구두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 넣어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 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