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빵
1
찐빵 한 두 개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있었다면
요즈음 젊은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철없는 젊은이 라면을 먹지
그랬느냐고 했을 것 같은데
당시는 라면이라는 음식이
생겨나지 않은 시절입니다.
고구마를 쪄서 팔거나
찐빵을 만들어서 팔고
국수를 삶아서 파는
아주머니들이 있었습니다.
전신주 아래 남의 집
처마아래 큰길 다리아래
커다란 소쿠리나
사과상자를 몇 개 놓고
갖가지 것들을 팔았습니다.
남자들은 지게를 지거나
수레로 짐을 날라주었고
젊은이 낮에는 신문을 길에서 팔았고
새벽에는 집집마다 배달을 했으며
우유 배달 담배장수 껌 장수
구두닦이 아이스께끼를 팔았습니다.
서울 역에서 용산 쪽으로
가다보면 기찻길 아래로 놓인
쌍 굴이 있었고 찐빵을 쪄서
팔던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나 막일 하던 사람들에게
당시로서는 알려진 아주머니입니다.
다른 집 찐빵보다 좀 크게 만들어서
팔았기 때문에 찾는 이가 많았습니다.
2
그 시절 좀 산다는 집 젊은이들은
명동 입구 음향기기 파는
가게를 찾았습니다.
명동거리를 다니는 것과
음악을 듣는 것이 자랑이고
바바리 코트자락을 귀까지 덥고
검은 장갑 끼고 다니는 것을
멋으로 생각했습니다.
지포 라이터로 불을 켜서
긴 양담배 입에 물고 종일
다방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충무동 영화 골목에는
샘솟는 청춘의 젊은이들이
꾀나 모여들었습니다.
어쩌다 잘되면 배우로 이름을 날렸지만
주변에서는 딴따라라고 비하했습니다.
3
서울역 뒤 서 북쪽에 있던 중앙시장은
시골에서 아무 연고 없이 올라온
사람들의 막 일 터였습니다.
그 지역이 개발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일터를 잃고
서울 전약으로 흩어졌습니다.
지금은 그 주변 산은 없어지고
김대건 신부가 세운 성당만 남아
점심시간 젊은이들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재개발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고 우는 일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찐빵 한 개로 시작된 이야기가
서울 일부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서울 어느 구에서 지난날의
흔적 물건을 가진 사람이나
자료 가진 사람 찾는 답니다.
사는 것도 힘들던 시절 자료가 남아 있을까 하면서
세월이 더 흘러 그나마 없어지기 전에 찾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