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게시물ID : lovestory_835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9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08 22:23:40

사진 출처 : http://worldofdreaminghearts.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FblxafhNQr4





1.jpg

고운기문명

 

 

 

귀족들 마차가 거리를 메우자

파리와 런던의 시가지를 온통 말똥이 점령했었다지

마차에서 쏟아지는 말똥이 공해가 되어

가솔린 쓰는 자동차를 만들었다지

말똥보다 가득하고

말똥보다 무서운

배기가스 매연이 나타날 줄 몰랐었겠지

그리운 말똥

먼 훗날에도 시인은 여전하겠지

그리운 매연

이라고 쓰겠지







2.jpg

정끝별밥이 쓰다

 

 

 

파나마 A형 독감에 걸려 먹는 밥이 쓰다

변해가는 애인을 생각하며 먹는 밥이 쓰고

늘어나는 빚 걱정을 하며 먹는 밥이 쓰다

밥이 쓰다

달아도 시원찮을 이 나이에 벌써

밥이 쓰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쓰고 글을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을 쓰고 관을 쓰고 쓰고 싶어 별루무 짓을 다 쓰고 쓰다

쓰는 것에 지쳐 밥이 먼저 쓰다

오랜 강사 생활을 접고 뉴질랜드로 날아가 버린 선배의 안부를 묻다 먹는 밥이 쓰고

결혼도 잊고 죽어라 글만 쓰다 폐암으로 죽은 젊은 문학평론가를 생각하며 먹는 밥이 쓰다

찌개그릇에 고개를 떨구며 혼자 먹는 밥이 쓰다

쓴 밥을 몸에 좋은 약이라 생각하며

꼭꼭 씹어 삼키는 밥이 쓰다

밥이 쓰다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고

떼꿍한 눈이 머리를 쓰다듬는 저녁

목메인 밥을 쓴다







3.jpg

문정희율포의 기억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뽑혀 밀려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무위(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4.jpg

김형영노루귀꽃

 

 

 

어떻게 여기 와 피어 있느냐

산을 지나 들을 지나

이 후미진 골짜기에

 

바람도 흔들기엔 너무 작아

햇볕도 내리쬐기엔 너무 연약해

그냥 지나가는

이 후미진 골짜기에

 

지친 걸음걸음 멈추어 서서

더는 떠돌지 말라고

내 눈에 놀란듯 피어난 꽃아







5.jpg

김광규

 

 

 

낡은 혁대가 끊어졌다

파충류 무늬가 박힌 가죽 허리띠

아버지의 유품을 오랫동안

몸에 지니고 다녔던 셈이다

스무해 남짓 나의 허리를 버텨준 끈

행여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물에 빠지거나

땅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도록

붙들어주던 끈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나의 허리띠를 남겨야 할

차례가 가까이 왔는가

앙증스럽게 작은 손이 옹알거리면서

끈자락을 만지작거린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