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54회를 보면서 갈수록 태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52회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아예 더욱 본격적이었습니다. 먼저 말미에 나온 대사를 한번 되짚어 보겠습니다.
월야 - “유신 넌 신라인이냐? 가야인이냐? 결정하거라. 결정해!” 유신 - “가야는 없다.” 설지 - “뭐라?” 유신 - “인정해라 언제까지 가야 유민의 목숨을 담보로 허황된 꿈을 꾸려는 게냐?” 설지 - “허 네놈이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네놈의 개인 영달을 위해서 가야를 버리겠다는 것이냐?” 월야 - “연모 때문이냐? 폐하를 연모해서 그런 것이냐? 폐하를 연모하는 네 마음의 우직함 때문에 그런 것이냐?” 유신 - “아니다. 난 누구보다도 냉정한 현실을 생각한 것이다. 700년을 이어 온 신라다. 가야 출신의 왕? 진정 그것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월야 - “해서?” 유신 - “방법은 하나다. 철저한 2인자.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야.” 설지 - “네 이놈!” 유신 - “우리가 가야의 왕손으로 해야 할 일은 남은 가야인들이 억압받지 않고 그들의 자손을 남기게끔 하는 일이다. 가야의 김씨들이 멸족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 해서 삼한일통에 가야민들이 앞장 서야 한다는게야.” 월야 - “2인자의 길. 삼한일통? 그것이 네가 가야를 버리고 택한 대의인가? 김유신! 너와 나의 동맹은 끝이다.”
드라마에서 ‘김유신’은 자신과 덕만의 부족한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서 가야 독립을 꿈꾸는 유민 세력인 ‘복야회’와 동맹을 맺습니다. 복야회의 수장인 ‘월야’와 ‘설지’는 김유신의 궁극적인 꿈이 스스로 왕이 되어 가야를 부활시키는 것으로 믿고 이에 따릅니다. 하지만 ‘덕만’이 ‘선덕여왕’으로 즉위하자 자신의 세력기반이었던 복야회는 이제 장애물로 전락하고 맙니다. 신라의 복야회 소탕 작전이 시작되고 동맹을 맺고 고락을 같이 했던 유신과 월야는 결국 각자의 속내를 드러내게 됩니다. 여기에서 같은 멸망한 가야의 왕족으로서 유신과 월야는 두 가지 다른 처신을 각각 보여주고 있습니다.(김유신은 532년 법흥왕 때, 신라에 항복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김구해’의 증손입니다. 김구해의 아들 김무력과 손자 김서현은 모두 신라 조정에 충성하며 귀족의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월야는 가상의 인물로 극중에서 562년 정복된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 월광태자(도설지)의 아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항복을 택한 금관가야계와 끝까지 독립을 유지하려고 했던 대가야계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월야가 가야의 부흥을 추구하는 반면, 유신은 신라인보다 더 철저한 신라인이 되어 삼한일통의 대업을 주도하려고 합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김유신은 비슷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뚜렷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추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왕가에는 독립의식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제나 고구려의 멸망 후 왕족을 중심으로 부흥 운동이 수십년 간 계속 일어나는 것도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 합니다. 하지만 김유신은 가야의 왕족이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고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서 철저한 2인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돈인 김춘추를 추대하여 왕으로 옹립하였고 끝까지 신라의 삼국통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후일 그는 흥덕왕에 의해 흥무대왕에 추존되었습니다. 가야인이 신라의 왕이 된 것입니다.)
저는 위의 장면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은 2007년 KBS에서 방영된 ‘경성스캔들’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입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식민지 조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비애를 멜로와 함께 무겁지 않으면서도 강렬하게 잘 버무렸다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선우완과 이수현은 친구였습니다. 선우완은 조선을 대표하는 자본가의 둘째였고 이수현은 그 집 소작인의 아들이었죠. 선우완의 아버지는 비록 소작인의 아들이지만 똑똑한 이수현을 자신의 큰 아들과 함께 일본 유학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우완의 형은 시신이 되어 돌아왔고 밀고자가 바로 이수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세월이 지나고 일본 고등계 형사가 되어 나타난 이수현에게 선우완은 형을 밀고한 것이 맞는지 다그치고 이수현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이수현 - 형에게도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우승열패. 강자가 약자를 이끌어주는 것이 사회진화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근대화를 이룬 일본과 함께해야 한다. 내선일체만이 조선의 민중들이 살아갈 길이다. 흥! 콧방귀도 안 뀌더군. 하지만 한번 둘러봐 수많은 청춘들이 뜨거운 피를 바쳤지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했나? 민중들은 여전 무식하고 미개하고 무능해. 지식인들은 여전히 피해의식과 열패감에 빠져 있지? 무지한 그들과 뭘 할 수 있겠나? 열등감에 빠져있는 그들이 도대체 뭘 할 수 있지? 하! 일본을 인정하고 그들의 적자가 되는 길만이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선우완 - 그래서 형을 팔았냐? 대답해 그래서 형을 밀고했냐고 묻잖아! 이수현 - 가망 없는 조선에 아까운 청춘을 바치는 노릇 그만 두게 하고 싶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형에 대한 애정이었다. 결과가 비극적이어서 유감이었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선인의 정신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물론 뒤로 가면 이수현이 왜 저렇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가 공개됩니다. 드라마를 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차피 조선은 망했다. 일본은 세계를 주름잡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독립은 현실적으로 영원히 불가능하다. 우리가 살길은 철저히 일본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아시아 정복에 앞장서서 공을 세운다면 우리는 2등 국민으로서 대접받으며 다른 민족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독립보다 더 현실적으로 가능성 있는 길이다.’
현실! 그렇죠. 언제나 현실이 문제입니다. 이수현도 김유신도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민족이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까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는 것은 일제에 강압으로 35년간 분명히 한반도의 민중이 수탈을 당하고 고통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본 열도에 사는 민중에 비해 훨씬 큰 차별을 받으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이 현실을 합리화시킵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의 논리로 몰고 갑니다. 오직 손익만 계산할 뿐입니다. 상황이 바뀌면 또 다른 현실이 등장하고 또 거기에 잘 적응해 나가죠. 그러면서 그들은 생존했고 지금까지도 버젓이 행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한다고 많이들 말씀 하십니다. 저도 그냥 드라마의 줄거리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고, 아직도 제대로 역사 청산이 되고 있지 않은 이 현실에서 비록 드라마지만 이와 같은 장면이 제 눈길을 끄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역사를 가르치고 있어 가지는 직업병인가 봅니다.)
물론 작가가 친일을 옹호한다거나 역사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장면이 등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드라마 제목이 선덕여왕이고 김유신이 남자 주인공(그것도 굉장히 멋있게 나오는)인 상황에서 친일의 논리와 겹쳐진다고(제 주관적인 관점에서) 생각되는 대사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 것에 마음이 조금 갑갑합니다.